Oranje

vs 브라질 - 오.합.지.졸. 혹은 명.불.허.전.

낑깡이야 2011. 6. 6. 23:31
오랑예의 남미 원정 2연전, 그 첫 번째 경기였던 브라질전.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 속에 펼쳐진 빅-매치는 싱겁게 0대0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무득점에 그치고 승리도 챙기지 못한 홈팀 브라질보다는 원정에서 패하지 않은 오랑예가 얻은 것이 많은 경기. 그러나 내용을 복기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랑예에게도 아쉬움이 컸던 경기였다.

초호화 공격진? 오.합.지.졸.
반 마르바이크 감독은 브라질전에 색다른 공격진을 들고 나왔다. 측면 자원으로 활용하던 아펠라이를 No.10으로 기용, 카이트-반 페르시-로벤과 호흡을 맞추게 했다. 스네이더-반 더 바르트의 공백이 아쉬웠지만 이것만으로도 초호화 공격진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은 대단했다. 특히 기존의 No.10들이 보유하지 못한 무기 - 기동력과 드리블 돌파 - 로 경기를 풀어갈 아펠라이에 대한 기대가 컸다.

결과적으론 '스네이더 의존도'를 확인하는 경기밖에 되지 못했다. 반 페르시, 로벤, 아펠라이의 개인 전술은 오랑예서도 톱 클래스를 다툰다. 찬스 대부분이 이들의 개인 역량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땐 득보다 실이 많았다. 개인 전술을 과신, 간결한 볼 처리로 경기를 풀어가기보다는 스스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이날 오랑예는 어설픈 브라질-아르헨티나에 불과했다.

오랑예 특유의 간결한 볼 처리, 빠른 공격 템포가 실종된 상황에서 브라질을 위협하기란 어려운 일. 특히 능숙한 완급 조절, 수비 조직력을 일순간 무너뜨리는 핀포인트 패스로 공격을 이끌던 스네이더의 부재가 크게 느껴졌다. 볼을 가졌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움직임도 확연히 달랐으며 공간을 활용하는 능력도 평소보다 현저히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공격진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브라질전이었다.

함량미달 수비진? 과.소.평.가.

현 세대 오랑예에겐 지겹게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함량미달 수비진'이 바로 그것. '수비진의 이름값/무게감이 떨어진다, 오랑예 레벨에는 적합하지 않다' 등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반 마르바이크 체제 오랑예의 최대 강점은 중원에서부터 시작되는 견실한 수비 조직력이다. 클럽과 대표팀을 넘나든 중추들의 호흡을 바탕으로 클럽 못지않은 조직적인 수비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데 용-헤이팅하 라인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인 수비로 브라질의 현란하고 저돌적인 공격에 능숙하게 대처했다. 비록 네이마르-호비뉴를 앞세운 브라질 공격진과의 1대1 싸움에선 고전했으나 팀으로선 승리한 셈. 특히 카운터 어택의 열쇠를 쥔 로벤은 차치하더라도 카이트조차 평소보다 수비 가담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경기. 이러한 경기에서 무실점 경기를 펼친 것은 괄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수비 대형의 핵심 5인 가운데 2인 - 반 보멜 & 스테켈렌부르흐 - 이 결장했고 친선전 특성상 교체가 잦았음에도 조직력이 유지됐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주전은 물론, 주요 백업들까지 반 마르바이크 체제의 전술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능숙하게 구현해내는 수준까지 다다랐다는 뜻. 1년 앞으로 다가온 유로 2012와 3년 뒤 이날 경기가 치러진 장소서 펼쳐질 2014 월드컵서도 '과소평가' 수비진은 큰 힘이 될 것이다.

대체자원 발견! 반.가.워.라.
앞서 언급했듯이 애초에 불참한 선수도 많았고 친선전인 만큼 교체도 잦았다. 스네이더, 반 보멜, 스테켈렌부르흐는 물론, 반 더 바르트, 테오 얀센, 블라르 등 오랑예 붙박이 선수들이 상당수 제외돼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전력손실이 컸던 경기였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다양한 선수와 조합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가 됐다. 바이날둠, 루크 데 용 등 젊은 선수들은 출전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수확이 있는 경기였다.

브라질전 주전을 꿰찬 크룰은 맹활약으로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애초 반 데 사르-스테켈렌부르흐가 자랑하는 연계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 그는 재치있는 순발력과 안정된 선방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No.1이라는 중압감에 주눅 들지 않고 융 오랑예서 보여준 기량을 마음껏 펼친 것. 우루과이전 기회를 받게 될 실리센 혹은 텐 라울라르를 긴장하게 하기 충분한 활약이었다.

스트로트만의 재발견도 수확 가운데 하나. 그동안 경기 운영, 핀포인트 패스 등 공격에서 강점을 보였던 그는 강한 압박과 패스 차단으로 반 보멜의 빈자리를 훌륭히 메워줬다. 수비력에 대한 의문을 떨쳐낸 것. 한편 10분 간격으로 연달아 투입된 마두로와 스하르스는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두로는 다소 둔해진 몸놀림으로 경기에 도움이 되지 못한 반면 스하르스는 노련한 완급조절로 공수를 조율, 합격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