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je

vs 독일 - 이게 오랑예라고?

낑깡이야 2011. 11. 16. 09:24
완.패. 이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경기였다. 단순히 0-3이라는 결과 때문이 아니다. 내용에서도 완벽히 압도당한 경기였다. 흡사 격투기 챔피언으로 유명한 청년이 동네에서 싸움 잘하기로 소문난 소년을 자택으로 초대해 놀아주는 꼴이었다. 그만큼 독일은 안방에서 여유만만했고 손님이었던 오랑예는 주눅이 들어 기를 펴지 못했다. 독일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오랑예의 불안요소를 파악할 수 있는 '평가전'이었다. 

승패를 가른 것은 깊이
두 팀 모두 최상의 전력으로 경기에 임하진 못했다. 독일은 MF 슈바인슈타이거, DF 람 등 자신의 포지션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베테랑이, 오랑예는 FW 로벤, FW 반 페르시, MF 반 더 바르트 등 공격 첨병 역할을 하는 선수들이 대거 결장했다. 어느 쪽의 손실이 심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결장한 선수들이 각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두 팀의 승부를 갈랐다. 그것은 선수단의 깊이였다.

독일은 MF 크로스와 DF 보아텡으로, 오랑예는 FW 바벨, DF 브라프하이트 등으로 공백을 메웠다. 이러한 선택은 승패에 큰 영향을 미쳤다. 크로스와 보아텡이 전임자들의 공백을 훌륭히 메우는 동안 바벨과 브라프하이트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으로 결장한 선수에 대한 아쉬움을 더했다. 특히 브라프하이트는 위치를 지키지 않고 눈앞의 선수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수비진의 자멸과 3실점으로 이어졌다.

독일은 과감한 세대교체와 꾸준한 실험으로 양과 질 모두를 잡았다. 반면 오랑예는 신예 발굴보다는 조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탓에 베스트 11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졌다. 물론 MF 스트로트만, FW 루크 데 용 등이 가세했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미비한 수준. 그 결과, 주력 선수 일부가 부상으로 쓰러지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던 퍼즐이 와르르 무너지는 약점을 안게 됐다. 바로 이러한 문제점이 오랑예의 발목을 잡았다.
 

오랑예답지 않았던 오랑예
기본적으로 독일이 더 좋은 경기를 펼쳤다. 굳이 경기를 복기하지 않아도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독일은 홈 이점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리듬을 이어갔고 간결하면서도 날카롭고 세련된 공격으로 오랑예에 비수를 꽂았다. 문제는 오랑예. 이들은 이른 실점으로 리듬이 완전히 무너졌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흐름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들고 나온 전략이 무언인지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무색무취'였다.

잦은 패스 실수로 위험한 지역에서 
번번이 역습을 허용했고 공격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상대를 위협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이보다도 아쉬웠던 것은 적극성 결여였다. 반 마르바이크 체제의 오랑예는 '투지'로 대변될 만큼 적극적이고 정신적으로 잘 무장이 된 팀이다. 하지만 친선전이라고는 하나 이날 오랑예에게선 투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독일의 흐름을 끊기는커녕 말려들고 말았다.

특유의 기동력도 실종됐다. 단순히 선수들의 속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패스 템포, 공간을 창출하는 움직임 등 오랑예의 장점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이는 수비에서 압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스트로트만-반 보멜 체제가 안은 불안요소가 그대로 드러났다. 뒤늦게 MF 나이젤 데 용을 투입했지만 이미 흐름은 기운 상황. 이날만큼은 유니폼만 '오렌지색'이었을 뿐, 전혀 '오랑예'답지 않았다.

패배는 쓰나 참패는 달다
A매치에서 3점차 패배를 당한 것은 유로 96 잉글랜드전(1대4 패) 이후 14년만. 또한 독일전 3점차 패배는 59년 서독전 0대7 대패 이후 51년만이다. 그리고 반 마르바이크 체제에선 최초의 일. 비록 친선전이라고는 하나 그만큼 충격적인 패배였다. 특히 원정이었다고는 하나 최고의 라이벌 그리고 유로 2012에서 우승을 다툴 강력한 후보에게 참패했다는 사실은 팀 사기를 떨어뜨리는, 반갑지 않은 결과다.

그러나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라고 했던가. 패배는 뼈아프지만 참패는 팀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간과하거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불안요소들에 과감히 메스를 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중한 성격의 반 마르바이크가 유로 2012라는 큰 대회를 앞두고 과감히 메스를 꺼내 드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반 바스텐 감독이 유로 2008 직전 MF 나이젤 데 용을 선택한 결단처럼 필요한 것이라면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이미 개혁이 예고되고 있다. 드디어 네덜란드 시민권을 획득한 DF 더글라스는 이변이 없는 한 오랑예에 합류, 정체된 수비진에 경쟁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백업 선수들에겐 풍부한 경험을, 리그서 활약 중인 유망주들에게 많은 기회를 줘 적극적으로 전력 향상을 꾀할 필요가 있다. 6개월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준비 기간. 오랑예는 보다 알차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Rapport: Extra huiswerk voor Oranje na off-day
http://www.ad.nl/ad/nl/1049/Oranje/article/detail/3035860/2011/11/16/Rapport-Extra-huiswerk-voor-Oranje-na-off-day.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