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je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낑깡이야 2015. 4. 1. 10:44

터키-스페인과의 2연전.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먼저 유로 2016 예선 터키전. 이 경기는 이전 경기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전술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전과 유사한 베스트 11로 경기에 임했고 맞춤형 전략을 들고나온 터키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종료 직전 슈나이더의 골이나 다름없는 훈텔라르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다시 패배를 맛봤을 터. 터키가 1골을 지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공격에 집중해 네덜란드의 불안한 후방을 공략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네덜란드에겐 여러모로 운이 따랐던 경기. 덕분에 플레이오프 진출 자격이 걸린 3위는 사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궁지에 몰린 히딩크, 스페인전을 앞두고 변화를 꾀한다. 가장 큰 변화는 중원. MF 데이비 클라센을 투입하고 DF 데일리 블린트를 끌어올렸다. MF 요르디 클라시도 테스트할 예정이었으나 그는 훈련 도중에 발생한 부상으로 아쉽게 중도 하차. 그러나 이 변화만으로도 팀은 180도 달라졌다. 패스를 주고받으며 공간을 창출해내고 공수에 부지런히 가담하며 팀을 동적으로 만드는 이 두 선수의 가세는 스페인과의 중원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경기를 주도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주장 완장을 찬 MF 스네이더도 책임감을 가지고 전과 다르게 동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도 승리의 요인.


스페인전은 네덜란드가 반 페르시-로벤 없이도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결과였다. 특히 현 네덜란드가 부진을 탈출할 모범 답안은 '젊은 피의 중용'이었다는 것이 결과로 잘 드러났다. 터키전과 비교해 작은 변화만 줬을 뿐인데도 팀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결국 자신에게 익숙한 조합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던 히딩크 감독의 선택이 틀렸던 셈.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던가. 네덜란드에겐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 이 기세를 살려 체코-아이슬란드에게 패배를 되갚아줄 수 있다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다시 상승가도를 탈 수 있을 것이다.


주요 선수 평가


FW 멤피스 데파이 - 전술, 전략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경기였다. 에레디비지에선 PSV가 항상 경기를 주도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본인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이 탓에 일부에선 탐욕스럽고 팀에 융화되지 못한다며 과대평가된 선수라고 혹평을 하기도. 그러나 이 경기를 통해 그러한 성향이 팀과 리그에 따른 것이라는 걸 증명했다. 동료를 활용해 공격권 유지에 힘을 보탰고 때론 원투패스와 공간 창출을 통해 과감하게 슈팅을 시도하며 로벤이 빠진 공격을 이끌었다. 터키전에선 침묵했지만 스페인전에 보여준 그 모습은 차세대 에이스로 손색이 없었다. 그를 겨우 1시즌으로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MF 데이비 클라센 - 그는 단순히 미래가 기대되는 유망주가 아니라 이미 네덜란드 현역 MF 가운데 으뜸가는 선수다. 그리고 기회를 잡은 스페인전에 그걸 증명했다. 그는 근년에 네덜란드에서 볼 수 없었던 유형이다. 반 더 바르트와 스네이더도 젊은 시절에는 공수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성향이지만 클라센처럼 이렇게 균형 잡힌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2선에서 득점을 노리는 공격형 MF부터 후방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수비형 MF까지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중원을 쉴 새 없이 누비는 네덜란드형 '박스 투 박스' MF다. 흔히 '제2의 베르캄프'라고 부르곤 하지만 오히려 '네스켄스에 가깝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인재. 네덜란드는 그런 그의 비중을 키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