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LATE

루이 판 할은 맨유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No.9 KJH 2014. 5. 20. 18:12


 감색 자켓과 붉은 넥타이 차림을 한 라이언 긱스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필드를 살핀다. 그 옆엔 트랙수트 차림의 니키 버트, 폴 스콜스, 가장 왼쪽에는 게리 네빌이 앉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The Class of 92」가 아니다. 유나이티드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멤버들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은 특유의 정취가 있다. 하지만 퍼거슨의 아이들이 벤치를 장식할 장면은 조금 미뤄질 것 같다. 5월 19일 붉은 악마를 계승할 감독으로 현 네덜란드 국가대표 감독 루이 판 할이 되었기 때문이다.


 계약기간 3년. 판 할 감독취임기자회견.

루이 판 할
 
"나는 프리미어 리그팀 감독이 되고싶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일 할 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럽의 감독이 된 게 자랑스럽다 나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를 상대한 적이 있다. 올드 트래포드의 아름다움, 그리고 팬들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알고있다. 클럽은 거대한 목표를 갖고있고 나도 거대한 야망을 갖고있다. 우리가 하나가 된다면 역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류 브랜드」 판 할
 
 개인적으로 판 할 선임은 결코 나쁜 선택지가 아니라고 본다. 긱스가 지휘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보고싶은 마음도 분명 있다. 현역은퇴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정식 감독을 맡기엔 너무나 부담이 크다. 다른 리그에 비해 잉글랜드는 경험이 적어도 감독을 맡기도 한다. 하지만 긱스가 판 할의 조력자가 되기로 한 건 유나이티드를 이끄는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판 할을 감독으로 세운 건 이치에 맞다. 아약스 시절 챔피언스리그 우승, 바르셀로나도 두번 경험했으며 바이에른 뮌헨과 네덜란드 국가대표를 이끈 그는 백전노장이다. 선수와 감독의 네임밸류를 고집하는 유나이티드 서포터들도 판 할이라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부활의 열쇠는 측면

 하지만 판 할을 반기는 가장 큰 이유는 전술적인 부분이다. 핵심은 역시 사이드다.

 퍼거슨은 측면을 아주 잘 활용하는 감독으로 알려져있다. 4-4-2 양사이드에 빠른 스피드로 돌파가 되는 선수(긱스), 정확한 크로스를 올릴 수 있는 선수(베컴)을 배치하는 수법은 그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4-2-3-1에서도 비슷하게 호날두, 영, 발렌시아같은 선수를 기용했다.

 하지만 이 접근법은 양날의 검이 되었다. 측면으로 벌리고 중앙으로 올려 득점을 노리는 방식은 분명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비효율적이 되었다. 실제로 퍼거슨재임 말기에는 사이드축구의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확률축구 그리고 비확률 축구

퍼거슨류 사이드 축구의 공과 실

 이걸 따지기 위해 비교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맨체스터 시티다. 과거 3시즌. 양 팀의 명운은 윙어 운용에 의해 결정되었다. 2011-12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93득점 29실점이란 기록을 남기고 44시즌만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적극적인 영입과, 시즌 막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저조했던것도 있지만 전술적 돌파구가 된 건 만치니 감독이 만들어가는 축구를 추구했기때문이다.

 선데이 미러 기자 사이몬 머록은 퍼거슨과 만치니가 선보인 축구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퍼거슨은 확률축구를 선호한다. 윙어가 사이드를 돌파해서 패널티 에어리어로 올리면 10번 중 1번이나 2번정도는 아주 좋은 기회가 생긴다는 믿는다.

 만치니는 달랐다. 그는 도박을 선호하지 않았다. 물론 맨체스터 시티도 크로스를 올리긴하지만 오히려 사이드로 빠졌더라도 다시 패스로 이어가며, 다시 아군진영으로 공을 돌려 수비를 끌어내는 등 상대를 무너뜨리고 기회를 가져가고자 했다.

만치니가 빠진 자가중독

 12-13시즌. 시티는 유나이티드에게 리그 우승을 내준다. 판 페르시가 유나이티드에서 골을 양산했기때문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영향을 준 건 시티의 93득점이 66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건 시티의 전력을 생각한다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묘한 부진에 빠진 이유 중 하나는 만치니가 자가중독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자신감을 쌓은 만치니가 만들어가는 축구를 추구한 결과 시티는 불필요한 패스가 많아졌고 다이나믹한 플레이와 득점력을 잃었다.

 이런 경향은 데이터에서도 나타난다. 옵터의 분석팀은 득점기회가 71회, 슈팅수 41회, 명백한 득점찬스에서의 득점성공률이 14퍼센트나 줄었고 밝혔다. 거기에 선굵고 빠른 축구가 아니라 티키 타카식 숏패스로 스타일로 바꾼게 악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바르셀로나의 전 제네럴 매니저 치키 베히리스타인이 시티에 들어온 것과 맞물리는 것이다.


페예그리니와 함께 부활한 사이드축구

하지만 13-14시즌 시티는 부활했다.

 새 감독 페예그리니는 만치니가 만든 숏패스 의존을 버리고 다이나믹한 리듬과 스피드, 무엇보다 사이드를 활용한 공격을 부활시켰다. 그 상징적 존재는 헤수스 나바스이며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헤더로 재탄생한 제코였다.

 그 결과 시티는 전시즌 66득점에서 102득점으로 증가. 여기에 견고한 수비가 더해져 리버풀을 따돌리고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거머쥐게되었다.

 기괴한 변화를 보여준 모예스 감독의 유나이티드

 한편 유나이티드는 기괴한 방향으로 변화했다.

12-13시즌 유나이티드는 리그우승. 퍼거슨은 아름답게 퇴장했다. 하지만 윙어축구를 끝내 최종 진화시키지는 못했다. 그것은 판 페르시 의존도가 높았던 것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시즌 도중 실리를 챙기기위한 어쩔 수 없는 방책이었으나 애초에 카가와 신지를 영입한 것은 유나이티드 축구를 진화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13-14시즌 퍼거슨의 뒤를 이은 모예스는 전술진화를 오히려 돌려놓았다. 사이드 축구를 진화시키기는 커녕 판 페르시와 루니가 부상으로 빠져있어도 똑같은 전술을 구사해, 유나이티드는 무척 확률이 낮은 축구를 하는 집단으로 추락한 것이다. 크로스 올리기 경쟁을 보여준 풀럼전이 가장 좋은 예이다.

 모예스가 유나이트에 가져온 건 단순히 골수가 줄어든 것에 끝나지 않는다. 상대 수비진을 무너뜨리지도 않았는데 그저 사이드에서 크로스를 올렸고 유나이티드는 기회창출횟수 자체가 감소. 크로스횟수는 상승했지만 슈팅수는 시티 510번, 유나이티드는 396번에 머물렀다.
 

 유나이티드 재건의 첫걸음

 시대를 역행하는 방식으로 퇴화한 사이드 축구를 원래대로 되돌린다. 이게 다음시즌 유나이티드가 먼저 손을 써야하는 팀 재건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 할만큼의 적임자는 없다. 그는 윙어를 중시하는 네덜란드 축구의 전통, 그리고 토탈축구를 추구해 아약스 시절에는 3-4-3을 구사 챔피언스리그를 제패. 그 공적을 인정받아 바르셀로나 감독에 취임해 4-3-3 등을 채용하며 윙어를 중시한 공격축구를 일관적으로 추구했다.

판 할은 사이드 축구를 진화시킬 수 있다.

 분명 판 할은 바르셀로나 시절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또한 네덜란드인 편애와 전술적 고집이 심해 팀 분열을 야기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피구, 클루이베르트, 그리고 히바우두 삼각편대가 활약한 축구는 마치 정밀기계처럼 기능미, 다채로운 공격패턴, 그리고 개인과 팀의 환상적인 하모니가 이루어졌다. 98-99시즌 캄푸 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3:0으로 완승한 경기는 아직도 내 뇌리에 남아있다.

 판 할은 스승 요한 크루이프나 동문 후배격인 과르디올라와 마찬가지로 윙어 축구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현대 축구계의 교주적인 존재가 되었다.

 판 할의 감독 취임이 가져오는 것은 퍼거슨 시절 확률론적 축구로 단순히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농구의 3점슛과 레이업슛을 연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윙어를 활용한 사이드공격을 기능케하는 건 중앙과 바이탈에어리어 앞에서의 정밀한 패스워크와 콤비네이션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퍼거슨이 목표로한 다음 목표, 즉 판 할에게 요구될 윙어축구의 정상진화다.


 압박축구

 판 할의 기용은 공격활성화 이외에도 빛을 발한다.

 1997년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취임할 당시 판 할은 각 선수의 포지셔닝 지켜야할 구역을 엄밀하게 규정지었다. 이것은 바르셀로나 수비가 크게 진화하는데 공헌했다.

 역사상 최강을 자랑한 과르디올라 시대의 바르셀로나에선 속칭 5초룰이 유명하다. 이것 또한 판 할이 심어놓은 규율을 기초로 한 것이다. 펩 과르디올라에 관한 책을 쓴 바라게는 5초룰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과르디올라가 채용한 단순명쾌한 방침은 판 할을 이은것이다"

 압박과 효과적인 공격은 떼어낼 수 없다. 모예스 체제의 유나이티드는 압박이 전혀 없었으며 아군 진영의 바이탈에어리어까지 너무도 간단히 상대방을 허용시켰다. 토탈축구 신봉자인 판 할 감독 취임이 유나이티드 수비 재건에 기여할 것은 틀림없다.


당대 일류의 전술가로부터 카가와 신지가 얻을 수 있는 것

 그럼 판 할 취임은 카가와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센터포워드엔 네덜란드 국가대표인 판 페르시가 있고 루니가 10번 포지션에서 플레이하게되어 카가와의 자리가 없어졌다고 한탄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판 할 같은 당대 일류의 전술가로부터 배우는 건 카가와에게 있어 결코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 또한 4-3-3이나 4-2-3-1, 혹은 3-4-3등에서 측면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는 건 선수의 클래스 업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애시당초 카가와는 측면에서 기용될때도 중앙으로 들어오는 플레이를 선호한다. 하지만 괴체나 실바 등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이드에서 제 역할을 해주는 것 또한 현대 10번에게도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또한 카가와는 4-3-3의 3에서 사비나 이니에스타같은 3의 공격형 미드필더의 기술을 배우는 것도 가능하다. 퍼거슨이 카가와를 영입했을 땐 스콜스의 후계자가 되어주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긱스가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카가와를 보란치로 기용한 것도 미드필더로써의 소질을 느꼈기때문이다.

판 할 취임으로 생기는 또다른 볼거리

 우선 유망주들의 적극기용이다. 바르셀로나 시절 과르디올라를 대신할 팀의 중추에 사비를 심은 건 다름아닌 판 할이었다.

 물론 전술에 관해 퍼거슨 이상으로 원리주의적인 판 할에 반발하는 선수가 나올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 싸워나가야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비전과 팀워크를 추구하고 그 위에 내 시스템, 1-4-3-3에 어울리는 선수를 찾는다. 나는 이 시스템을 항상 사용했기때문이다. 어린 선수가 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나는 그를 고른다. 나이가 많아도 상관없다. 나이는 문제되지 않는다"

잉글랜드 언론과 상성도 미지수이며 숨은 보스 퍼거슨과의 관계도 아직 지켜봐야한다.

게다가 프리미어리그에 있어 첼시와 리버풀과의 경기는 3세대에 걸친 사제대결(판 할, 무링요, 로져스)이다. 2시즌 두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셀로나나 바이에른과 만난다면 이것 또한 화제를 모을 것이다.


루크 쇼 영입은 판 할의 의사인가?

아마도 이번여름 유나이티드는 지금까지 본적 없던 변혁을 이룰 것이다.

 퍼디난드와 비디치가 팀을 떠나는 건 확정. 에브라도 떠날 수 있다. 수비를 지탱했던 3명이 한번에 떠나는 건 어떤 클럽에 있어서도 쉽게 해결하기 힘든 사태다. 팀의 기둥을 다시 세워야한다. 게다가 감독이 바뀌면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미 현 시점에서 긱스 이외에도 여러 코치가 새로 추가되었다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안보단 기대쪽이 훨씬 크다. 어젠 사우스햄튼의 잉글랜드 레프트백 루크 쇼가 유나이티드 이적 합의 보도가 있었다. 다음시즌을 위한 보강에 새 감독의 의향이 전혀 안 들어가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고 베테랑 저널리스트 톰 티렐 등은 맨유가 판 할과 접촉한 게 언론에 알려지기 훨씬 전이었다는 견해를 내보였다. 그렇다면 판 할의 계획은 사이드백 영입부터 시작된거라 할 수 있다.
 

새로 태어날 붉은 악마는 매력에 가득차있다.

 이전 유나이티드의 골키퍼 판 데르 사르는 지도받은 감독 중 루이 판 할이 제일이었다고 전한다.

 퍼디난드도 이렇게 말했다.
 
"그는 무척 터프하고 스트레이트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인다. 자신의 방침을 꺾지않는다. 유나이티드같은 클럽에서는 그래야만 한다. 아약스, 바이에른 뮌헨, 바르셀로나 그가 지도한 모든 클럽에서 자신의 방식을 관철한 인상을 받았다"

 오웬은 판 할 감독취임이 사실이라면 현재 팀의 멤버들이 컬쳐쇼크를 받을 것이다고 트위터로 경고했다. 하지만 언론을 포함한 현지 반응은 호의적이다. 유나이티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그런 컬쳐쇼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퍼거슨의 27년간에 걸친 재임기간에 5번 팀 개조를 단행했지만 판 할 감독 취임은 그 5번 모두보다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긱스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버리기 아쉬운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네덜란드 감독 아래서 새로 태어날 붉은 악마의 모습은 그 이상의 매력과 기대감에 넘쳐난다.

text by Masayuki Tanabe
photograph by Getty Images

http://number.bunshun.jp/articles/-/82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