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5 에레디비지 31라운드 PSV 에인트호벤 vs 헤렌벤. 필립스 스타디온에선 경기가 열리기도 전부터 축제 분위기가 조성됐다. 시종일관 선두를 지켜왔던 PSV가 이 경기를 잡으면 잔여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려 7년 만에 찾아온 행복에 에인트호벤은 기쁨으로 들떴고 그것이 선수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헤렌벤의 저항이 거셌으나 그들은 줄곧 그래 왔던 것처럼 상대를 힘으로 눌렀고 모두 기대했던 승리 그리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필립 코쿠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은 아이처럼 뛰며 우승을 만끽했고 에이스 FW 멤피스 데파이는 인터뷰어를 우승 뒤풀이에 끌어들이며 생애 첫 우승에 열광했다. 그렇게 에인트호벤에도 햇빛이 스며들었다.
PSV를 이끈 힘 '맨-파워'
26승 1무 4패 그리고 84득점이라는 놀라운 기록과 달리 PSV의 행보는 완벽하지 않았다. 후반기에는 라이벌 아약스와 페예노르트에 연달아 패하면서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경기력에서 실망감을 안겨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PSV가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힘' 즉 맨-파워가 어느 팀보다 대단했기 때문이다. 선수 개인 능력으로 경기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선수가 즐비했다. 득점왕을 다투던 데파이-L.데 용은 물론이거니와 2선에서 쏟아지는 바이날둠-마헤르의 득점 지원, 어느 때보다 빛났던 DF 제트로 빌렘스의 공격 가담 등 구석구석에서 맨-파워의 힘을 보여줬다.
데파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단한 시즌이었다. 94년생이 20+골을 기록한다는 것, 아무리 리그가 약해도 쉬운 일이 아닌데 데파이는 그것을 해냈다. 사실 데파이에 대한 기대를 생각하면 그렇게 만족스럽진 못한 시즌이었다. 시즌 초반, 월드컵에서의 흐름을 이어가 엄청난 활약을 펼치다가 부상으로 흐름이 끊긴 것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지난 시즌과는 전혀 다른, 우리가 알지 못하던 데파이를 보여줬고 무엇보다 다른 선수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를 확보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큰 무대로 진출할 데파이 그리고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필요한 네덜란드에게도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FW 루크 데 용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초반에 득점 행진을 펼칠 때도 그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상대의 압박이 강한 경기에선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원인. 그러나 경기를 거듭할수록 위력을 되찾았고 큰 무대에서 중요한 득점들을 올려주며 PSV의 힘을 보여줬다. 특히 제공권에서 강한 모습을 보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월드컵을 다녀오면서 한층 성장한 MF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의 리더십, 팀에 녹아들면서 아직 포기할 재능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 MF 마헤르의 창의력, DF 빌렘스의 공격적 재능은 PSV가 매 경기 상대를 압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완벽하게 대체하다
PSV가 13/14시즌에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와중에도 체면치레할 수 있었던 것은 임대생들의 활약 덕택이었다. 황혼기에 친정팀으로 돌아온 MF 박지성은 전반기에는 측면, 후반기에는 중원에서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줬다. 덕분에 시즌 후반부터 연승 가도를 달리며 차기 시즌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또한 겨울에 합류한 FW 브라이언 루이스는 트벤테 시절에 보여준 파괴력은 없었으나 개인 능력에만 의존하던 어린 선수들을 이끌며 시너지란 무엇인가를 가르쳤고 중요한 시점에는 골까지 터뜨리며 힘을 실어줬다. 만약 이들이 없었더라면 더 깊은 나락에 떨어졌을 수도 있었을 터.
그들의 영향력이 워낙 컸기에 걱정이 앞섰던 14/15시즌이었다. 기우였다. 마르셀 브란츠 기술 이사가 수완을 발휘, 적재적소에 경험 많은 선수들을 데려왔다. 대성공이었다. 큰 무대를 누볐던 MF 안드레스 과르다도는 박지성 이상의 영향력으로 PSV의 우승을 뒷받침했고 미완의 대기에 불과했던 FW 위르겐 로카디아 대신 투입된 FW L.데 용은 PSV가 폭발적인 화력을 선보이는 데 일조했다. 특히 과르다도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중원에서 정확한 위치 선정과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바이날둠-마헤르가 공존하게 했고 때로는 측면 수비의 뒤를 봐주며 빌렘스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할 수 있게 했다. 이에 완전 이적을 체결, 차기 시즌에도 PSV와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숙제 남긴 우승
PSV, 7년 만에 찾아온 우승의 기쁨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다. 아직 풀 숙제가 많다. 당장 오랜만에 출전하게 될 챔피언스리그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 이들을 괴롭힐 것이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엑소더스'다. 데파이부터 바이날둠, 빌렘스, 레킥 등 PSV를 성공으로 이끄는 주축 선수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큰 무대 그리고 대형 클럽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새로운 무대에 대한 그들의 갈증과 열망이 커진다면 PSV도 마냥 잔류를 내세울 수 만은 없을 것이다. 결국 15/16시즌을 앞두고 판을 새로 짜야 할 공산이 큰데 선수들을 골고루 활용하는 것에는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PSV이기에 고민이 크겠다.
한편 무색무취라고 비난이 쏟아지던 1시즌 전과 비교해 큰 성장을 이뤄낸 코쿠 감독이라 기대하는 시선이 많다. 그러나 아직 큰 경기에서 보여준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의문부호가 붙는다. 판을 짜는 능력, 급박한 상황에 대처하는 임기응변 등 여러 부문에서 아쉬움을 남겼던 그다. 경쟁 팀들과의 수 싸움에서 그렇게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이유. 이를 생각하면 주축 선수들이 대거 교체될 15/16시즌 선수단을 이끌고 큰 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이를 일궈낸다면 2008년을 끝으로 종적을 감춘 PSV의 왕조가 다시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