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je

히딩크 사임, 후임은 블린트 유력

낑깡이야 2015. 6. 30. 10:53

결국, 히딩크 감독이 간밤에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예정된 절차였죠. 이미 1개월 전부터 KNVB 내에서 다른 직책을 찾아보며 '자연스러운 결별'을 준비했는데 그 작업이 막바지 단계인지 마침내 사임을 선언했네요. 시원섭섭하고 찝찝한 결말입니다. KNVB의 고집이 미래가 밝던 네덜란드와 명장 히딩크의 커리어를 망쳐놨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번 대표팀은 출발 과정부터 어느 하나 순조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아마 예정대로 쿠만 감독이 사령탑에 앉았더라면 지금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을 겁니다.


히딩크 체제에 실망스러웠던 점들은 이미 포스팅을 통해 수차례 언급했었죠. 그래도 한번 되짚어보면 무엇보다 아쉬웠던 건 전술적 역량입니다. 히딩크의 지략은 우리에겐 익숙한 2002 한일 월드컵뿐 아니라 대표팀과 클럽팀을 오가며 수차례 증명된, 그의 최대 강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5 네덜란드는 달랐습니다. 시대에 동떨어진 낡은 전략과 전술, 떨어지는 임기응변으로 강호의 힘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라거벡 감독(아이슬란드), 브라바 감독(체코) 같은 경쟁 팀들의 지도자들이 여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네덜란드를 꺾는 이변 아닌 이변을 일으켰죠.


선수들의 질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였던 반 할 감독이 불과 1년 전에 이 팀으로 어떤 성적을 냈는가를 생각하면 말이죠. 오히려 월드컵을 통해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었지만 히딩크는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반 할이 과감하게 내쳤던 선수들을 다시 중용하면서 질서가 잡힌 대표팀을 어지럽혔죠. 선수 선발의 권한은 전적으로 감독에게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그의 대표팀은 의문투성이였습니다. 뒤늦게 실수를 만회하고 바로 잡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도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카드가 되진 못했습니다.


제가 가장 아쉬운 건 세대교체를 가속화할 절호의 시기를 날려버렸다는 점입니다. 유로 2016 출전국이 24개국으로 늘어남에 따라 강호들에겐 여유가 생겼고 이는 더 많은 자원을 테스트해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브라질 월드컵에는 참여하지 못했으나 대표팀에서 중용 받을 만한 인재 그리고 유로 2016 예선 기간 성장한 신예들을 잘 엮는다면 또 최소 5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팀이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물론, 중위권 팀들이 동기부여가 생겨 어느 때보다 강한, 짜임새 있는 전력을 보여주는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거기에 밀려 탈락한다면 강호라는 이름표는 떼야겠죠.


넋두리는 여기까지 하고. 후임은 블린트 코치가 유력합니다. 이미 반 할 체제 때부터 대표팀 감독을 보좌하며 경험을 쌓아왔죠. 애초 KNVB가 구상했던 히딩크-쿠만 체제가 무너지면서 대안으로 내놓은 게 히딩크 감독이 유로 2016까지 팀을 지도하고 블린트가 지휘봉을 건네받는 그림이었습니다. 아마 이를 깨진 않을 겁니다. 블린트, 감독으로서 인상적인 커리어를 보낸 건 아닙니다. 아약스를 한 시즌(05/06) 지도했던 게 전부죠. 그 당시 그래도 공격 전술과 팀 관리에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약스가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 마지막으로 진출한 것도 그때였죠.


경험 부족을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보다 나쁠 순 없는 상황이며 (수년이 지났지만) 아약스에서 보여준 것과 반 할-히딩크를 보좌한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아약스 A1(유스)을 지도한 게 지도자 경력의 전부였던 반 바스텐이 지휘봉을 잡았던 2004년보다는 상황이 낫다고 봅니다. 선두 아이슬란드와는 5점, 2위 체코와는 3점 차. 흐름만 타고 맞대결만 잡는다면 못 뒤집을 격차는 아닙니다. 히딩크 감독이 스페인전에서 보여준 것이 힌트가 될 겁니다. 제 생각요? 내심 기대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