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je

스스로 자초한 위기다

낑깡이야 2015. 9. 7. 11:19

이렇게 무기력한 네덜란드를 본 적 있는가. 위풍당당하던 오렌지가 시종일관 짓눌려 과즙이 되고 말았다. 이러면서 네덜란드는 자력으로 본선에 합류할 수 없는 위기에 놓이게 됐다. 신임 감독 블린트를 탓할 것도 없다. 이 팀은 애초 네덜란드 축구협회가 어쭙잖게 거스 히딩크 감독의 자리 만들어주려고 꼼수를 부리다 로날드 쿠만 감독을 놓칠 때부터 잘못됐다. KNVB의 삽질 + 히딩크의 고집 + 선수들의 부진, 이 삼박자가 멋지게 어우러진 작품. 아직 2경기가 남아 회생 가능성은 있다고는 하나 그것도 지금의 네덜란드에겐 그렇게 확률 높은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네덜란드가 이 지경에 처하면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에레디비지의 경쟁력 하락과 그에 따른 선수들의 기량 저하에 대한 얘기가 가장 많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누누이 얘기해왔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과거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는 건 사실이나 그건 어느 대표팀이나 마찬가지다. 가장 큰 핵심은 이들의 전력이 과거에 미치지 못한다고는 하나 과연 체코, 아이슬란드보다 못한 수준이냐는 것이다. 애초 로벤 원맨-팀이었다? 로벤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 않은가. 당장 브라질 월드컵 예선 때도 절반 이상 자리를 비웠던 그다.


또 한 번 얘기하지만 결국 가장 큰 책임은 KNVB와 히딩크 감독에게 있다. 반 할의 세대교체 신호탄을 공포탄으로 착각하고 대표팀을 암울했던 2012년으로 되돌려놓은 히딩크 감독의 구시대적인 발상과 협회의 계획성 없는 주먹구구식 운영은 브라질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안고 돌아온 영광의 팀을 삐걱거리게 했다. 그렇다고 블린트 감독이 반 할 감독처럼 팀의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치며 과감하게 개혁할 만한 깜냥이 있는 감독도 아니니 막연한 기대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러니 출전국이 24팀으로 늘어난 대회에서 이런 망신을 당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복잡하게 축구 외적인 문제까지 볼 것 없이 팀의 내적인 문제만 봐도 딱히 기대가 안 된다. 베테랑들이 팀에 리스크만 안겨주는 이 상태로선 어설프게 본선으로 올라가봐야 그냥 참가했다는 도장만 찍고 돌아올 것이 뻔하다. 그럴 바에는 이 타이밍에 시원하게 광탈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래가 없다? 자국(정확하게는 F.데 부르의 아약스)에서 유능한 감독 아래 성장 중인 유망한 자원들만 잘 활용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팀이다. 가장 큰 문제는 쿠만과 F.데 부르의 발이 묶인 상황에서 누가 이 중책을 이끄는 책임자가 될 것인가. 블린트 유임? 사령탑 교체? 이것이 네덜란드의 최대 과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