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je

가끔씩 네덜란드 이야기 210831

낑깡이야 2021. 8. 31. 16:47

블로그를 너무 놀리는 것 같아서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네덜란드 선수들 & 에레디비지 관련 이야기들을 해볼까 합니다.

 

- 반데벡부터. 일전에 블로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프레드도 2년 차에 터졌으니 기다려보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그 적응한 2년 차의 반데벡도 텐하흐 감독 체제의 반데벡은 아닐 것이다"고 말이죠. 그로부터 한 7개월이 지났는데 제 생각은 변함이 없네요. 저는 색채를 더 잃어버리기 전에 떠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남아서 적응하고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데파이가 바르셀로나에 빠르게 안착한 건 인상적입니다. 리옹을 거치면서 선수로도 성장했지만, 이제야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러한 기량적, 멘탈적인 성장이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데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리옹에서 제네시오 감독을 만나면서 톱자원으로 위치를 옮기고 부활했는데, 여기서 기량을 많이 회복하고 몸관리도 잘 이루어지다보니 다시 측면 플레이도 잘 풀리는 것 같네요.

 

평균적으로 에너지는 넘치지만 정교함, 정밀함에 있어서는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이는 데파이고, 이것이 라리가 적응을 힘들게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시즌을 치르는 중에 이러한 문제점이 드러나는 시기가 있을 테고 이것을 얼마나 빨리 풀어내느냐가 꾸준함을 유지하는데 키가 되겠죠. 그래도 쿠만 감독 & 데용과 함께하는 건 선수 본인에게도, 대표팀에게도 아주 긍정적인 일입니다.

 

- 데용의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죠. 항상 최적의 위치는 어디냐고 이야기할 때 위치는 1.4.2.3.1의 3선 왼쪽이다, 그러나 위치보다는 역할, 풀어서 이야기하면 팀 체계가 어떻게 구축됐고 거기서 데용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대답합니다. 아약스라고 데용을 3선에만 쓴 게 아니죠. 1.4.3.3의 변형 리베로로 써보기도 하고, 1.4.3.3의 왼쪽 미드필더로도 활용해보다가 텐하흐 감독이 답을 찾은 게 1.4.2.3.1의 왼쪽 미드필더입니다.

 

데용은 자리를 가리지 않고 제 역할을 하는 전천후지만 그럼에도 왼쪽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사령관의 풍모를 풍기는 건 단순합니다. 왼쪽에서는 상대의 골대를 기준으로 볼을 뒤쪽 그리고 자신의 안쪽으로 두면서 소유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경기를 관장하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오른쪽에 서게 되면 볼을 오른쪽에 두고 플레이할 시에 상대 수비와의 각을 만드는 게 훨씬 어려워져 전환패스를 뿌리는 타이밍을 만드는데 버퍼링이 생길 수밖에 없죠.

 

그런데 바르셀로나에서는 페드리가 부분적으로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죠. 그래서 저는 페드리를 반칸 혹은 한칸 올리고 데용을 왼쪽으로 밀면서 왼쪽을 더 강화하는 쪽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쿠만 감독은 균형을 더 중시해 페드리와 동시에 투입될 때는 데용이 우측을 책임지는 쪽으로 가고 있죠. 그러나 이제 데파이까지 추가됐고 그와의 클럽-대표팀의 연속성까지 고려하면 데용의 동선을 왼쪽으로 옮기는 작업은 계속 시도해볼 겁니다.

 

- 베이날둠이 대표팀에서는 주득점원으로 꾸준히 활약 중이고 유로 2020에서도 제몫을 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저는 다릅니다. 베이날둠이 쿠만 감독이 떠난 시기와 맞물려 대표팀에서도 영향력, 꾸준함 같은 것들이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게 유로 2020에서 더 심각해졌습니다. 텐하흐 감독 체제의 10번 역할을 살펴보면 공격 국면에서는 공간을 찾아다니고 쪼개면서 보조 득점원 역할을 하고, 수비 국면에서는 가장 먼저 움직여 공격으로 전환하려는 상대의 흐름을 지연시키거나 끊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대표팀도 마찬가지인데 지금의 베이날둠은 이게 안 됩니다.

 

그런데 반할 감독이 부임했단 말이죠. 2014 월드컵 예선 당시 스네이더가 반더바르트-스트로트만에게 밀려 하마터면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할 뻔 했던 것도 이게 안 됐기 때문입니다. 하필, 베프 반더바르트의 부상 낙마로 본선 출전의 기회를 받고 멕시코전에서 중요한 골도 성공시켰지만 공격에서 이전만큼 기여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 베이날둠도 이런 전처를 밟는 분위기인데 반할이 이를 어떻게 잡을지 궁금합니다.

 

- 블린트는 피지컬적인 약점 때문에 제약이 있는 선수인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공격 국면에서 아군이 점유율을 높이고 공격을 만들어갈 때만큼은 그의 진가가 잘 드러납니다. 데용이 아약스 시절에 빛났고, 대표팀만 가면 날아다니는 것도 후방에서 블린트라는 지원군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상호보완적인 관계이기도 합니다. 비중을 따지자면 블린트가 돕는 것보다 도움을 훨씬 많이 받는 쪽이기도 하지만요.

 

블린트의 강점은 단순히 '빌드업이 좋다'로만 정의하는 건 아쉽습니다. 상대의 2~3선을 무너뜨리는 중장거리 패스들을 높은 확률로 과감하게 뿌려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는 굉장히 높은 위치까지 전진해 아군의 숫자를 늘려주는데 크게 기여하죠. 데용이 안 풀릴 때 가장 가까운 위치서 지원해주고 공격 작업을 리셋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가장 잘하는 것도 블린트입니다. 네덜란드의 모든 감독들이 대단한 수비수들을 벤치에 앉혀두는 선택을 하더라도 그를 기용하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 주장, 그리웠다. 무사귀환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