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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22]세네갈전 - 데리흐트, 노페트 그리고 F.데용

낑깡이야 2022. 11. 22. 18:40

네덜란드 2-0 세네갈

반할 감독의 1.3.5.2를 꾸준히 관찰해오셨던 분이라면 월드컵 첫 경기 베스트 11에 대해 의문부호를 던지셨을 겁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기존과는 다른 카드를 꺼냈는지 그리고 결과는 어땠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반할 감독이 1.4.3.3 대신 1.3.5.2를 선택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해보죠.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좌우의 불균형'

좌측이 데파이(+베르바인)-F.데용-블린트로 구성돼 원활하게 기능한 것과 달리 우측 조합은 예선 내내 반할의 고민거리였습니다. 베르하이스가 이적 후 중원에 정착하면서 측면에서의 영향력을 잃어버렸고 고육지책으로 수많은 좌측 자원을 우측으로 돌렸으나 신통치 않았죠. 이러한 가운데 후방 빌드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블린트를 기용함으로써 찾아오는 리스크가 점점 커지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꺼낸 카드가 1.3.5.2였죠. 물론, 도입 초반이었던 3월에는 팀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고 최적의 조합을 찾고자 여러 테스트를 거쳤으나 6월을 기점으로 조합을 완성하면서 팀이 궤도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데리흐트 vs 팀버
다시 주제로 돌아가 보면 1.3.5.2 체제의 최대 수혜자는 팀버였습니다. 좌측의 아케가 윙백(블린트)을 커버하고 공격 전개 과정에서 1.2.3.1.4의 후미, 수비 전환 과정에서 1.4.4.2의 왼쪽 센터백 역할을 한다면, 팀버는 1.2.3.1.4에서 한 칸 전진한 3의 위치에서 우측 빌드업을 원활하게 하고 과감하게 전진하거나 측면으로 빠져 어느 곳에서나 수적 우위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겸했습니다. 둠프리스의 역할이 명확하고 간결하게 정리되면서 퍼포먼스를 내기 좋은 환경이 구축된 것도 팀버의 기용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데리흐트의 선발 출전은 나름대로 깜짝 기용이었습니다. 단순히 바이에른에서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다고 선발로 기용하기에는 쓰임새가 다른 좌우측이었고, 이러한 이유로 데리흐트가 선발로 기용된다면 팀버보다는 아케의 자리에 설 공산이 크다고 설명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할 감독이 데리흐트를 선택한 건 결국 세네갈 공격진의 물리적 강함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할 감독도 월드컵 첫 경기인 만큼 자신들의 축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강점을 억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물론, 팀버가 소속팀에서 집중력 부족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인 것도 영향이 있을 겁니다.

이러한 선택으로 네덜란드는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내실 있는 경기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세네갈전이었죠. 네덜란드에서는 'Never Change Winning Team'이라는 철학을 굉장히 중시하고 반할 감독 또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를 거듭 강조하며 3위라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데리흐트 vs 팀버에 대한 고민은 멈추지 않을 것 같네요.

 

'인생역전' 노페트
노페트의 기용은 하루 전에 반할 감독이 선발을 예고했을 때부터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데리흐트의 기용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높이, 속도, 경합 등 세네갈의 물리적 강함에 대항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봤습니다.

분명히 후방부터 만들어가길 원했다면 그러한 축구에 적합하고 소속팀에서도 유사한 역할을 수행 중인 파스베르나 바일로브를 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할의 선택은 빠른 반사신경과 긴 리치로 골문 앞에서 위압감을 주는 '2.03m GK' 노페트였고 불과 1년 전까지 네덜란드 하위팀(고어헤드)의 백업 GK였던 그는 8년 만에 월드컵으로 돌아온 네덜란드에 승리를 안겨주는 대표팀 주전 GK가 됐습니다.

애초 대표팀이 노페트에 기대한 것은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크롤과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승부차기, 페널티킥 등 원 포인트 기용에 초점을 맞춘 세 번째 키퍼였죠. 그런데 바일로브가 그동안 대표팀에서 확고한 주전이라고 할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고, 파스베르가 최근 1~2개월 동안 지난 2시즌과 같은 안정감을 보여주지 못한 게 결과적으로 노페트에게는 기회가 됐습니다. 다만, 반짝에 그칠지, 신화가 될지는 아직 증명해야 할 것들이 남았습니다.

 

F.데용은 왜 독박축구를 해야 했는가?
F.데용이 네덜란드의 와해된 중원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던 F.데용의 진가가 나오는 장면도 있는 반면 평소답지 않게 치명적인 실책들도 꽤 범했고 이것이 팀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죠. 그런데 이러한 원인을 단순히 중원에서만 찾는 것은 1차원적인 이야기입니다.

'공격수' 학포를 10번 자리에 프리롤로 풀어둬 3선의 수비 부담이 늘어난 점, 얀센-데리흐트의 기용으로 우측라인에 큰 변화가 일어난 탓에 전개와 마무리가 엉망이었던 점, 베르하이스가 덜컹거리는 우측을 지원하고자 측면으로 빠진 것을 조정해주지 못한 점, 아케가 패스 선택지를 계속 망설이면서 후방에서 전방으로 볼을 공급해줄 기회를 번번이 놓친 점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힌 탓이죠.

개인적으로 데파이의 선발 출전이 어렵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중원을 F.데용-베르하이스-코프메이너스로 구성하고 학포를 한 칸 올려서 데파이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하길 원했던 것도 이러한 밸런스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베르바인-얀센(데파이) / F.데용-학포-베르하이스로 구성한 것은 이를 베스트 11로 낙점하고 완성도를 올리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이것이 세네갈전에 한해서는 실패에 가까운 선택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후반에 교체 투입된 데파이의 영향력, 2022년 경기들에서 보여준 베르하이스의 공격 전개 관여도와 해당 위치에서의 활약, 팀버의 분명하고 특수한 역할을 고려했을 때 전체적인 그림을 수정한다면 경기력 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판단되고 이는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