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je

Dark Oranje - 환영받지 못한 자

낑깡이야 2012. 1. 20. 21:16

오랑예하면 가장 누가 먼저 떠오르십니까? '토탈풋볼' 그 자체인 요한 크라이프?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마르코 반 바스텐? 여러 이름이 떠오르시리라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우아했던 공격수 데니스 베르캄프나 마라도나와 어깨를 나란히 한 루드 굴리트를 언급하시는 분들도 있겠죠.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존재하는 법. 뛰어난 실력을 보유했음에도 빛을 보지 못한 채 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선수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러한 선수들을 되돌아볼까 합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감독의 선호도에 따라 중용되지 못한 선수도 있으며 핵심 선수와의 충돌로 본의 아니게 오랑예 유니폼을 입지 못했던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들 모두 오랑예 붙박이로 활약해도 부족함이 없는 기량을 지녔던 선수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자, 이제 환영받지 못했던 오랑예들을 만나러 가봅시다.

FW 피트 카이저(Piet Keizer) - 아약스가 낳은 전설적인 날개. 또한 크라이프가 자신의 선수 인생에서 '최강의 파트너'로 지목한 선수. 70년대 초반 아약스가 유럽을 호령하던 시절, '로얄 페어'라 불리던 그와 크라이프는 전 유럽이 두려워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오랑예에서도 에이스였던 크라이프와 달리 카이저는 대표팀 운이 없었습니다. 8년 동안 32경기(11골) 출전에 그쳤고 월드컵 결승무대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압도적인 스피드를 자랑하는 스피드 스타이자 강력한 왼발의 소유자였던 그는 아약스에서만큼은 크라이프 못지않은 스타였습니다. 그러나 오랑예에선 득점에 있어서만은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던 FW 렌센브링크에 밀려 벤치를 지켜야 했습니다. 한편 로얄 페어로 불리던 것과 달리 카이저는 크라이프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고 이 때문에 사실은 언론에 밝혀진 것과 달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루머도 있었습니다.

FW 빌리 반 더 카일렌(Willy van der Kuijlen) - 'Mr.PSV' 반 더 카일렌. 에레디비지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입니다. 선수 입단식 때 항상 등장하는 분이기도 하죠. '아약스에 크라이프가 있다면 PSV에는 반 더 카일렌이 있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PSV를 대표하는 스타였습니다. 에레디비지 통산 최다 득점자(311골)이기도 하죠. 그러나 그는 항상 크라이프의 그림자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두 선수는 경기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는 플레이 성향부터 고집불통의 성격까지 다방면에서 닮아 있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쉽사리 공존하지 못했고 충돌하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오랑예는 1인을 택해야 했고 선택을 받은 자는 크라이프였습니다. 결국 반 더 카일렌은 73/74시즌 득점왕(27골)을 차지하고도 WC 74에 참가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습니다. 아마 크라이프가 가장 원망스러웠던 이가 아니었을까요.

GK 얀 반 베베른(Jan van Beveren) - 지난해 6월, 생을 마감한 에레디비지의 전설적인 수문장. 에레디비지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운 실력의 소유자였으나 오랑예에선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가 크라이프에 반하는 세력이었기 때문이죠. 70년대 초반 오랑예는 '크라이프파'와 '반 베베른파'의 세력 다툼에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는 WC 70과 유로 72에서 연이어 본선 진출에 실패한 원인이기도 하죠.

'크라이프파'는 크라이프, 네스켄스 등 아약스 출신 선수들이 중심이 된 세력이었고 '반 베베른파'는 반 베베른과 반 더 카일렌 등 아약스 출신이 아닌 선수들이 중심이 된 반 아약스(Anti-Ajax) 세력이었습니다. 특히 반 베베른은 바르셀로나에서 활약 중이던 크라이프가 대표팀에 합류할 때마다 '스페인의 왕이 납셨군'이라며 빈정대곤 했습니다. 결국 그는 뛰어난 실력을 지녔음에도 오랑예에선 융블루트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DF 배리 훌스호프(Barry Hulshoff) - 70년대 초반, 아약스가 유럽을 3연속 제패하던 당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선수를 선택하라면 저는 1초의 고민도 없이 훌스호프를 추천합니다. 그만큼 그의 존재감은 대단했습니다. 흔히 크라이프를 사령관, 네스켄스를 행동대장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렇다면 훌스호프는 보디가드였습니다. 최후방 수비수였지만 공격과 수비를 쉴새없이 넘나들며 토탈풋볼을 가능하게 한 선수 중 하나였습니다.

거친 외모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는 '파이터'였습니다. 힘과 높이를 겸비했을 뿐 아니라 스피드도 뛰어났죠. 흡사 '탱크'를 보는 듯한 플레이에 혀를 내두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당시 경기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그는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당당히 유로피언컵(現 챔피언스리그) 3연패의 주역으로 이름을 남긴 것과 달리 오랑예에선 아리 한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레전드입니다.

Barry Hulshoff(L) & Johan Cruij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