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가 위기에 처했다. 이러다가 24개국이 참가하는 유로 2016에도 얼굴을 내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신세가 처량하다. 이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역시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구세주'의 등장이다. 유로 2004 예선 당시 플레이오프로 밀려났던 네덜란드를 벼랑 끝에서 끌어올린 약관의 MF 웨슬리 스네이더를 기억하는가. 그런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주길 기대하고 있다. 에레디비지 득점 선두 FW 안바르 엘-가지, 아직 대표팀에 연착륙하지 못한 미완의 대기 FW 바스 도스트 등 여러 인물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MF 리체들리 바주르. 불과 18세(96년생)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에레디비지를 대표하는 클럽 아약스의 중원을 이끄는 무서운 아이다. 무서운 건 이미 14/15시즌 후반기에 승격과 함께 주전을 꿰찬 프로 데뷔 2년 차이며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네덜란드 팬들이 내심 대니 블린트 1기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길 기대했던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이에 블린트 감독도 '엘-가지와 바주르도 지켜보고 있다'며 여운을 남기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금단의 길을 건넌 야심가
바주르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망주였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2012년 U17 유럽선수권 대회. 스타이벤베르흐 감독(현 맨유 코치)이 이끄는 U17은 이미 2011년에도 우승을 거머쥔 높은 수준의 축구를 하는 팀이었고 2012년에 그가 만든 팀의 중심에는 주장 MF 나단 아케와 그가 있었다. 두 선수가 토너먼트 내내 보여준 수비적 역량은 대단했고 결국 네덜란드의 2연패를 이끌었다. 특히, 최후방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하며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던 그의 모습은 네덜란드 유소년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신선한 장면이었기에 아직 강한 인상이 남아 있다.
그런 그가 그해 겨울, 대형 사고를 친다. 친정팀 PSV 에인트호벤의 만류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 아스널, 첼시 등 빅클럽들의 구애를 뿌리치고 아약스와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사실 유스 선수가 아약스에서 PSV로 혹은 PSV에서 아약스로 오가는 건 의외로 자주 있던 일이다. 그러나 MF 바주르는 얘기가 달랐다. PSV는 '보석을 뺏겼다'며 분개했고 아약스는 굉장한 재능을 포섭한 것에 대해 큰 기쁨을 표했다. 훗날의 얘기지만 바주르는 MF로 뛰고 성장하길 원했는데 PSV는 그가 DF로 성장해주길 바랐고 그것이 의견 차이로 이어져 이적을 단행하게 됐다고 한다.
에레디비지를 휘젓는 무서운 10대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아약스의 일원이 된 MF 바주르, 입단 초기에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걱정을 안겼으나 14/15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다. 단숨에 리저브 팀 주전 MF를 꿰찬 그는 유필러리그(2부)에서 맹활약, 전반기 베스트 11에 선정됐고 그러자 F.데 부르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1군으로 올렸다. 그리고 그는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MF 툴라니 세레로, MF 라세 쇠네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여기서도 주전을 꿰찼다. 물론, 17세의 어린 선수라는 걸 고려해도 완벽한 데뷔라고 할 만한 시즌은 아니었다. 그러나 잠재력을 보여줘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그리고 돌아온 15/16시즌, 그는 초반부터 무서운 기세로 에레디비지의 중원을 집어 삼키고 있다. 그가 중원에서 경기를 컨트롤하고 거침없이 전진하며 공격을 감행하는 적극적인 모습은 흡사 프리미어리그와 월드컵 무대를 휘젓던 전설적인 MF 패트릭 비에이라를 연상케 할 정도. 이는 혼자만의 감상이 아니다. 네덜란드의 수많은 명사가 입을 모아 그를 MF 프랭크 레이카르트, MF 비에이라, MF 야야 투레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비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과거 아약스를 지휘했던 아드 데 모스 감독은 '그는 단언하건대 아약스에서 가장 거대한 재능이다'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넥스트 레이카르트의 길을 걷는다
'현재 네덜란드 대표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혹은 '가장 먼저 뜯어 고쳐야 할 것은 어느 포지션인가'라고 묻는다면 단연 중원이라고 답하겠다. 이것의 심각성은 아이슬란드-터키와의 2연전을 통해 잘 드러났다. MF 스네이더는 이미 미드필더이기를 포기했고 MF 바이날둠도 공격수에 가까운 유형의 MF다. 이번에는 소집되지 않았으나 MF 아펠라이 역시 마찬가지. MF 데이비 클라센이 본업인 공격형 MF 자리가 아닌 중원 최후방에 서서 경기를 컨트롤하느라 애를 먹는 모습이 네덜란드의 현주소를 잘 말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이 바로 바주르라고 말하고 싶다. F.데 부르 감독은 10대라고는 볼 수 없는 노련한 플레이를 펼치는 그를 보고 '마치 28~29세의 베테랑을 보는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벌써 이러니 경험이 쌓이고 기대만큼 성장해준다면 얼마나 큰, 상대 팀에겐 무서운 선수가 될까. 확실히 그의 완성된 신체, 나날이 원숙해지는 기량은 기대감을 높이기 충분한 것이다. 그가 본궤도에 오르면 MF 데일리 블린트, MF 케빈 스트로트만, MF 요르디 클라시 같은 선수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과언은 아니겠다.
과연 '뉴 레이카르트'로 불리는 바주르가 위기에 빠진 네덜란드를 구해내는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당장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남은 유로 2016 예선에 불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악재만 생기지 않는다면 이른 시일 내에 오렌지빛 유니폼을 입게 될 것이며 머지않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간판으로 우뚝 설 것이다. 네덜란드의 미래가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은 이유, 바로 '바주르'라는 이 무서운 녀석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