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 Rijkaard: “Dennis Bergkamp was brilliant for Ajax, but the best number 10 we ever had was Jari.”
94/95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통해 아약스라는 팀의 존재를 알게 된 나에게도 역시 최고의 No.10은 데니스 베르캄프가 아닌 야리 리트마넨이다. MF 프랑크 레이카르트, MF 에드가 다비즈 등 중원의 투사들과 여유롭게 공놀이를 하다 방심한 상대를 '존명쎄'하는 그의 뜬금없음은 아직 아약스형 10번의 교과서로 남아 있다. 사실 MF 라파엘 반 더 바르트, MF 웨슬리 스네이더부터 현재의 MF 데이비 클라센에 이르기까지 등 아약스의 여러 10번이 '베르캄프의 후계자'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베르캄프보다는 리트마넨을 더 닮은 것도 우연은 아니다.
적어도 아약스를 지휘했던 감독들 가운데 루이 반 할만큼은 나 그리고 레이카르트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그리움에 아마 은퇴하는 그 날까지 '새로운 리트마넨'을 찾아 헤맬 것이다(그리고 쉽사리 찾지 못할 것이다). 항상 새로운 팀을 맡아 재건하는 과정에서 마치 리트마넨의 빈자리를 마련해놓고 전술을 짜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겠지. 현 맨유도 이와 전혀 무관한 팀은 아니다. MF 안데르 에레라라는 출중한 미드필더 대신 FW 멤피스 데파이, FW 웨인 루니 같은 선수를 No.10에 기용하고 자리 잡게 애쓴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리트마넨은 '반 할's 철학'의 페르소나와 같은 존재다. 수비에 DF 프랑크 데 부르가 그런 존재라면 공격에선 리트마넨이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다. 아마 그가 네덜란드인이었다면 그의 위상은 지금보다 더 높았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바르셀로나-리버풀을 거치며 그저 그런 선수가 된 커리어와는 다른 길을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네덜란드는 베르캄프-리트마넨의 공존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바람에 90년대 중반에 그런 성적을 내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 다 흥미로운 가설일 뿐이지만. 결론은? 리트마넨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