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je

오랑예 백 4 - 얕보다 큰코다친다

낑깡이야 2010. 5. 4. 21:56

네덜란드 수비에 관해 말들이 많다. 그 가운데 화려한 공격진에 비해 수비라인이 허술해 이번 월드컵에도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유로 2008에서 러시아에 허무하게 무너진 인상이 강한 탓이다. 지역 예선에서 2실점만을 허용하며 막강한 수비력을 과시했음에도 손쉬운 조편성을 운운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오랑예 백 4는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지녔다.

유로 2008에서 반 바스텐호가 4-2-3-1로 돌풍을 일으켰음에도 여전히 네덜란드의 전술이 4-3-3인지, 4-2-3-1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아는 팬들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편된 백 4에 대해서도 알 리가 만무하다. 대부분이 지오-마타이센-오이에르-헤이팅하(불라루즈)라인이 주전 포백이라고 예상하고 있으며 국내 언론들의 월드컵 예상 라인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해한다. 저들이 월드컵 예선에서 가장 많이 모습을 드러낸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 틀렸다. 네덜란드는 오이에르의 노쇠화, 헤이팅하의 부활, 반 더 빌의 등장 등 여러 변수를 맞이했고 일련의 평가전을 통해 포백을 재편했다. 스테켈렌부르흐가 최후방에 지오-마타이센-헤이팅하-반 더 빌이 백 4에 포진한 수비라인이 남아공 월드컵에 모습을 드러낼 오랑예의 'NEW BACK 4'가 될 것이다.

베일 벗은 'NEW BACK 4'
시작은 호주와의 평가전이었다. 오이에르의 부상과 에버턴으로 이적한 헤이팅하의 부활이 묘하게 겹치며 헤이팅하가 베르트 반 마르바이크 체제에서 처음으로 센터백으로 기용된 경기였다. 대성공이었다. 그는 해리 키웰을 동네 아이 상대하듯 요리했고 동료 수비수들, 수비형 미드필더들과 함께 상대 공격진을 무력화했다. 결과는 0-0이었지만 호주는 오히려 -5점을 받아도 모자랄 정도로 네덜란드에 철저히 봉쇄당했다.

호주전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은 반 마르바이크 감독은 이어지는 평가전에서 계속 'NEW BACK 4'를 시험가동했다. 그리고 신임을 얻은 새로운 BACK 4는 4경기에서 단 1실점만을 허용하며 믿음에 보답했다.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던 미국전에서 집중력 결여로 종료 직전 카를로스 보카네그라에 만회골을 허용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무실점 행진을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달라진 BACK 4의 가장 큰 장점은 힘, 높이 등 육체적인 면을 강조한 지난 백 4와 달리 판단력, 예측력 등 지능적인 면이 강조되는 '두뇌형 BACK 4'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이 중심에는 정확한 판단력과 뛰어난 수비 지휘력을 지닌 헤이팅하가 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전술의 희생양이 돼 라이트백에서 고군분투했던 그는 자신의 포지션을 되찾은 시점부터 확연히 달라진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반 더 빌의 등장도 큰 힘이 됐다. 그동안 네덜란드는 측면 수비수들의 공격 가담을 강조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기량을 가진 선수를 수급하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처해있었다. 이러한 네덜란드에 반 더 빌은 한 줄기 빛이었다. 빠른 공수전환, 예측불허의 움직임, 문전을 파고드는 빠른 2선 쇄도는 네덜란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그가 눈 깜짝할 사이에 네덜란드 라이트백 주전을 꿰찬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수비라인 재편은 지오와 마타이센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파트너 오이에르의 노쇠화로 많은 부담을 떠안았던 마타이센은 헤이팅하의 보직 전환으로 대인방어, 커버링 등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일련의 평가전에서 집중력이 향상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 덕택이다. 한편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젊은 공격수들에 고전하던 지오도 수비라인의 재편으로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냈다.

Strength
앞서 언급했듯이 최대 강점은 힘, 높이 등 육체적인 면을 강조한 과거의 무식한 백 4에서 탈피, 판단력, 예측력 등 지능적인 면을 강조한 '두뇌형 BACK 4'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과거 마타이센과 오이에르 체제로 편성된 수비진은 힘과 높이를 앞세운 공격 패턴에는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배후공간을 공략하고 다양한 움직임으로 수비를 교란하는 지능적인 공격패턴에는 크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재편된 백 4는 상대의 다양한 공격패턴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타이센을 제외하면 지오, 헤이팅하, VDW 모두 유망주 시절부터 두뇌 플레이에 능하다는 평을 듣던 수비수들이며 실제로 이들은 유기적인 수비 조직력과 기민한 움직임으로 수비 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다재다능한 공격수들이 각광받는 이 시점에서 두뇌형 백4로의 재편은 시대의 흐름을 적절히 파악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백 4는 물론, 골키퍼까지 수준급 패싱력을 보유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강점이다. 지오, 헤이팅하는 동포지션 최상급 패싱력을 보유한 선수들이며 VDW도 기술적인 부문에선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선수다. 이는 점유율을 높이고 공격 템포를 변화무쌍하게 가져가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미드필더들이 압박에 고전할 때 직접 공격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Weakness
그러나 발을 맞춘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수비라인이 무결점이라면 거짓일 것이다. 재편된 백 4에도 분명히 불안요소는 존재한다. 먼저 공격적인 수비를 펼치는 팀답게 라인이 높게 형성되어 한 번의 실수가 치명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요소를 안고 있다. 또한 백 4가 새롭게 재편되고 4경기가량 소화했으나 정작 공격 부문에서 최정상급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팀들과 맞닥뜨리지 않았다는 점은 검증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한다.

높이에서도 약점을 안고 있다.  물론 헤이팅하가 정확한 위치선정을 자랑하는 수비수이며 마타이센도 공중볼에 강점을 보이는 선수이나 두 선수 모두 기본적으로 신장이 큰 편이 아니라 상대 공격수들과의 경합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완벽히 부활한 블라르가 오이에르을 제치고 단숨에 세 번째 수비수로 떠오른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각에선 블라르를 헤이팅하의 파트너로 기용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

마지막 불안요소는 측면 수비수들의 배후 공간이다. 지오는 주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어 주전으로 기용되고 있으나 노쇠화로 체력적 부담을 겪고 있다. 이미 에레디비지에서 스피드와 체력을 앞세운 젊은 측면 공격수들에 심심치 않게 고전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한편 반 더 빌도 측면 공격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종종 배후공간을 허용하는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헤이팅하의 임무가 막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