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je

2010 오랑예는 '독일'이다

낑깡이야 2010. 6. 22. 02:58
프랑스, 잉글랜드, 이탈리아 등 강호들이 체면을 구기는 가운데 오랑예는 유유히 2연승을 달리며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덴마크를 2-0으로 제압한 데 이어 일본도 1-0으로 돌려세우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럼에도 오랑예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이는 오랑예가 '오랑예다운' 경기를 보여주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확실히 현재의 오랑예에게선 오랑예의 향이 나지 않는다.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폭발력도 찾아볼 수가 없다.

비난의 주는 선수들에 관한 것이다. 오랑예를 지켜본 이들은 반 페르시가 원톱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반 더 바르트가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로벤의 부재에 따른 전력 약화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로벤처럼 탁월한 개인전술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릴 선수가 없어 답답한 경기를 펼친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다. 아마 엘리아를 중용하자는 의견도 이와 궤를 같이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코치진과 선수단은 침착하다. 그리고 현재의 경기력에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다. 반 마르바이크 감독뿐 아니라 스네이더, 데 용, 카이트 등 주축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오직 승리가 중요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허세나 변명이 아닌, 이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발언들이다. 이는 덴마크-일본과의 2연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선수들이 지은 표정을 들여다보면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랑예의 경기력에 만족하는 것은 선수단만이 아니다. 자국언론의 저명한 평론가들도, 명장들과 전설적인 선수들도 현재 오랑예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굴리트와 다비즈는 '2010 오랑예가 대단한 업적을 세울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고 아드보카트-벤 하커 등 명장들은 남아공까지 찾아가서 이들의 경기력을 칭찬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이것이 설레발일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마테우스의 발언을 들어보자. 그는 텔레스포트를 통해 '현재의 오랑예는 마치 독일을 연상케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오랑예가 좋은 경기를 펼치지 못하고 있음에도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이는 토너먼트 같은 단기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준 독일을 연상케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오랑예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칭찬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러한 발언들이 의미하는 바는? 오랑예가 비로소 토너먼트에 어울리는 경기를 펼치고 있다는 뜻이다. 오랑예가 그동안 월드컵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들은 오랑예라는 하나의 팀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기 보다는 개성 강한 선수들이 개인의 능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의 결정체는 90년대 아약스 제너레이션들이 축이 된, 그러나 미완성에 그친 유로 2000/2004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오랑예는 다르다. 이들은 팀으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한 케이스라는 생각이다. 23인 모두가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지 않고 팀에 희생하고 있다. 반 더 바르트는 자신의 재능을 죽이고 팀의 밸런스 유지와 동료의 지원에 힘 쏟고 있으며 낯선 타겟형 공격수의 임무를 맡은 반 페르시도 팀에 융화되고자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 모두가 반 마르바이크 감독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부진하다 평가받는 반 더 바르트도, 어색하다 평가받는 반 페르시도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오랑예의 전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이 반 마르바이크 감독의 신뢰 아래 2경기 모두 선발 출장한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단순히 현재의 오랑예는 수비진이 견고해졌다, 에이스들이 제몫을 해줬다 등 간단명료한 문장들로는 평가하기 힘들 만큼 수준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그러한 과정에서 승리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덴마크전과 일본전 모두 과거의 오랑예였다면 오히려 덜미를 잡혔을 가능성도 있는 경기 양상이었다. 그러나 오랑예는 이 경기들에서 승점 3점을 획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실점 승리를 거두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특히 공격과 수비라는 틀에 얽매여 있지 않고 선수 전원이 승리를 향해 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결과가 말을 해줄 것이다. 다시 16강, 8강 정도에서 멈춘다면 이러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대표팀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8강에서 만날 것이 유력시되는 브라질을 상대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을 넘어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선다면 이 팀은 분명히 재평가받을 것이다. 이것이 평론가들과 저명인사들 그리고 낑깡이 현재의 오랑예를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