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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의 벨벳 혁명

No.9 KJH 2019. 5. 18. 04:08

 아약스는 로망으로 가득찬 클럽이다. 고 요한 크루이프를 필두로 한 1970년대. 루이 반 할이 지휘했던 1990년대. 모두 그들의 아카데미 출신 선수들을 테크닉과 전술을 믹스시킨 공격적인 축구로 세계늘 놀라게했다. 축구계 혁명을 일으켜온 클럽은 지금 3번째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

 

성공의 키가 된 크루이프 혁명

 

 이번 시즌 CL 16강 진출팀에서 연간예산이 1억유로 이하는 아약스뿐이다. 축구계에서 아약스는 돈이 많은 클럽이라곤 할 수 없다. 그런 언더독이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를 공격적인 축구로 압도한 것은 통쾌하다.

 

 아약스는 94-95시즌 CL에서 우승하고 다음 시즌도 결승전에 진출했던 황금기가 있었다. 하지만 보스만 판결에 의해 선수들을 빅클럽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축구버블의 수혜를 입지 못 하고 평범한 축구팀이 되고말았다.

 그 상징인 경기가 2010년 9월 베르나베우에서 펼쳐진 레알 마드리드전이었다. 90분간 수비적인 경기를 보이며 슛 한번 쏘지 못 하고 2-0으로 패배했다. 요한 크루이프는 이것은 아약스가 아니라며 통렬히 비난했다. 이 후 크루이프는 아약스 혁명(벨벳 혁명)을 내걸었고 이것이 성공의 키가 되었다.

 

 크루이프가 가장 힘을 쏟은 분야는 아카데미였다. 당시에도 물론 아약스의 선수육성은 유명했고 매시즌 1군에 선수들을 제공했지만 크루이프의 평가는 엄격했다. 그들은 좋은 선수지만 챔피언스 리그 클래스가 없다는 비판을 했다. 아약스는 팀 육성이란 개념을 부수고 철저히 선수 개인의 육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16-17시즌은 아약스에게 벨벳 혁명의 과실이 맺는 시즌이 되었다. 네덜란드 2부리그에 소속된 융 아약스(리저브팀)이었다. 천재 압델 누리를 필두로 프렝키 데 용, 반 데 벡, 데 리흐트, 마즈라위가 소속되었었던 이 팀은 아약스 팬들을 매료시켰다. 이 후 불운한 사고로 선수생명이 끝나게 되었으나, 다른 멤버들은 모두 이번 시즌 아약스의 핵심이 되었다.

 

 한편 성인팀은 후반기에 들어 완성되었다. 당시 피터 보스 감독은 점유율을 위한 점유율에 지배당한 아약스의 악습을 끊고, 빠른 플레이 스타일로 팀을 개혁했다. 시즌 초반의 부진으로 리그 2위에 그쳤으나 유로파리그에서는 결승전에 진출했다.

 

 

 

베르캄프, 빔 용크 VS 반 데 사르, 오베르마스

 

 같은 시기 백야드에서는 크루이프파의 동료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벨벳 혁명의 중심멤버였던 빔 용크, 데니스 베르캄프는 아약스를 떠났다.

 

 베르캄프 vs 반 데 사르, 오베르마스는 이번 시즌의 아약스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피해갈 수 없는 화두이다. 베르캄프는 아약스 로망주의자이다. 1군팀의 감독은 2군팀의 감독이 맡아야하며 1군 선수들도 되도록 아카데미에서 올라온 선수들로 채우고 싶어했다. 한편 반 데 사르와 오베르마스는 아카데미에서 부족한 부분은 외부에서 채우고 싶어했다.

 

 이 분열은 보스 감독이 도르트문트로 떠난 뒤 다음 감독 선임 때 더 선명해졌다. 베르캄프는 2군 감독이었던 피터 카이저를 1군감독으로 승격시켜야한다고 주장했으나 반 데 사르는 그의 감독으로써의 재목에 의문을 가졌다.

 

 결국 베르캄프의 주장대로 카이저가 17-18시즌 1군 감독을을 맡게되었나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 탈락이라는 실태, 리그에서도 졸전을 거듭하였고 결국 베르캄프와 카이저는 아약스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오베르마스가 위트레흐트에서 에릭 텐 하흐를 데려왔다.

 

 텐 하흐는 과르디올라가 바이에른 뮌헨을 지휘하고 있을 때의 2군 팀 감독이었다. 또한 새로운 코치인 알프레드 슈뢰더는 호펜하임에서 나겔스만 감독의 오른팔이었다. 아약스는 보스 감독이 만든 빠른 공수전환을 다시 선보이며, 개인개인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중요시하는 축구로 돌아왔다.

 

 또한 탈리아피코, 타디치 등 즉전력을 외부에서 영입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블린트를 복귀시켰다. 베르캄프가 남아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영입이었다.

 

 텐 하흐가 이끄는 아약스는 이번 시즌 레알을 꺾으며 세계를 놀라게했다. 바로 8년전 형편없는 시합을 펼쳤언 베르나베우에서였다. 크루이프는 분명 천국에서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이 시합을 보았을 것이다.

 

 반 데사르, 오베르마스는 베르캄프와 의견이 달랐다. 하지만 나는 클럽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관인 아카데미를 근간으로 둔다는 점에서는 같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누리의 동료들이 이번 시즌 대활약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나카타 토오루

사커킹 201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