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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크한 녀석, 반 데 벡(van de Beek)에 관하여

낑깡이야 2020. 9. 2. 09:43

 

암스테르담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재능이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빅클럽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네, 도니 반데벡(아약스)의 맨유 이적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네덜란드 언론에 따르면 계약 기간 5년, 총 이적료 4,500만 유로(옵션 포함)에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네요. 네덜란드 대표팀 합류 기간 메디컬이 진행됐고 등번호 34번(For Nouri)을 달 예정이라는 소식까지 전해지니 오피셜만 남았다 싶습니다.

조언자 그리고 에이전트 역할을 겸하는 'Mr.아약스' 스바르트의 말에 따르면 6팀 정도가 크고 작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하더군요. 그 가운데 레알 마드리드 링크는 유명하고 가장 최근에는 아스널이 무척 원했지만 이적료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꾸준히 그리고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낸 맨유와 손을 맞잡게 됐네요.

맨유행이 유력해지면서 자연스레 반데벡을 향한 관심도 전보다 커졌는데 18-19 UCL에서 보여준 이미지, 근 1~2년의 이미지로만 선수를 총평하는 분들이 많고 그마저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아 정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또한 개인의 의견이니 정답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누구보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이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정도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 암스테르담의 재능이 UCL 스타가 되기까지

반데벡의 커리어는 텐하흐 감독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텐하흐 감독을 만나기 전의 반데벡은 누리와 함께 아약스와 네덜란드의 미래라고 불리던 재능이었죠. 유스 시절부터 8번, 요즘 이야기하는 1.4.3.3의 메짤라 역할을 맡아 이 자리에 필요한 능력들을 키워왔습니다. 때때로 6번에서 후방을 지원하는 역할도 했죠.

이 과정에서 적절한 포지셔닝으로 측면을 활용하는 능력, 공간을 찾아 들어가 득점을 돕거나 만들어내는 능력에서 큰 재능을 보였죠. 그리고 가끔 발현되는 '번뜩임'까지. 이런 선수가 아약스에서 데뷔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A팀 적응기를 거쳐 데뷔 3년 차인 17-18시즌에 완전히 꽃을 피웠습니다.

 

[참조] 네덜란드 & 아약스의 97년생 3대장 - 누리/반 데 벡/데커 (2015.10.27)

https://ajaxforce.tistory.com/385

 

이렇게 텐하흐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는 전형적인 아약스형 미드필더였다고 볼 수 있으나 텐하흐 감독이 자신의 뜻을 펴기 시작한 18-19시즌에 반데벡 또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합니다. 시즌 초반에는 확고한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하면서 고전하는 형국이었으나 타디치가 최전방으로 올라서는, 강팀 맞춤형으로 꺼낸 플랜 B에서 여러분에게 익숙한 반데벡이 만들어집니다.

1.4.2.3.1에서 3의 중앙에 위치,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텐하흐 감독의 전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공격 국면에서만큼이나 수비 전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유스 시절부터 자랑해온 결정력을 잃지 않으면서 후반기에는 아약스의 어떤 선수보다 빛나는 활약을 펼쳤죠. 그리고 UCL 토너먼트의 중요한 길목마다 결정적인 골들을 터뜨리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20시즌 중도에 다시 변화를 맞이합니다. F.데 용의 이적으로 텐하흐 감독에게는 새로운 빌드-업 메이커, 구심점이 필요했고 다양한 시도 끝에 지예크를 중앙으로 옮기는 대신 반데벡을 3선으로 내리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다만 이 조합은 부상자 속출에 따른 측면 붕괴와 지예크의 부상 그리고 리그 조기 종료로 미완성으로 남게 됐죠.

 

# 반데벡이라는 캐릭터에 관하여
텐하흐 감독을 만나기 전, 정확하게는 텐하흐 감독이 뜻을 펴기 전인 17-18시즌까지의 반데벡은 전형적인 아약스형 미드필더였다고 표현해도 과장은 아닐 겁니다. 아약스의 어느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유형이었죠. 큰 시스템 내에서 이 시스템이 잘 돌아가도록 기여하는 여러 톱니바퀴 가운데 하나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텐하흐 체제가 구축된 18-19시즌을 기점으로 새로운 개성을 얻게 됐습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압박형 10번' 혹은 '가짜 10번'이라고 할까요. 그가 텐하흐 체제에서 맡아온 역할을 살펴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압박형 10번의 의미는 그의 수비적 역할에 대한 해석입니다. 근년의 아약스를 보면 볼을 뺏기거나 공격이 막혔을 때 2차, 3차로 압박하면서 볼을 탈취하고 재공격을 펼치는 장면을 확인하실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텐하흐 체제는 공격이 무위에 그치고 수비로 전환할 때 굉장히 높은 선에서부터 수비를 시작하는 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먼저 시동을 걸고 달려드는 선수가 반데벡입니다.

견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압박하면서 상대의 공격 전환을 괴롭히고 수비진이 정비될 시간을 벌어주죠. 여기서 여차하면 볼탈취까지 이루어져 숏 카운터로 이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수입니다. 그냥 '수비 가담이 좋다'는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아까운 전술적 키워드고 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내는 선수.  18-19 텐하흐 체제 아약스를 어느 곳에서는 1.4.2.3.1로, 또 어느 곳에서는 1.4.3.3으로 해석하곤 하는 것도 반데벡의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움직임과 역할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한편, 독일과 바이에른을 대표하는 FW 뮐러를 '공간의 연주자'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반데벡도 큰 틀에서는 그와 유사한 성향, 그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선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격 국면에서 볼을 잡는 시간은 많지 않지만 그만큼 더 많이 그리고 영리하게 뛰면서 팀에게 도움을 주는 유형이죠.

단순히 공간으로 빠져들어 득점을 노리거나 돕는 역할을 하는 것만이 그의 전부는 아닙니다. 위치를 잡고 있는 상대 수비를 유인하면서 대열을 무너뜨리고 공격 작업을 수월하게 해주는, 소위 어그로라고 하는 '미끼'를 자처하는 선수입니다. 많은 플레이가 상대팀을 혼란스럽게 하는 영리하고 기민한 움직임에서 기인하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보면 상대 수비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공 상황에서도 그의 강점은 빛납니다. 전후좌우를 살피면서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타이밍으로 원터치 혹은 투터치로 리턴 패스를 주고받는 한편, 상대 수비를 돌아 뛴다거나 공간을 만들어내는 움직임으로 볼을 잡은 선수에게 여유를 주고 선택지를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이러한 공간 창출로 동료 선수들이 더 좋은 기회, 득점에 가까운 기회를 잡을 수 있게 하는 간접적 영향력도 행사하는 선수입니다.

'많이 뛴다', '하드워커' 같은 수식어 때문에 '투박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많은 플레이에서 침착함이 돋보입니다. 하물며 박스 내에서 상대의 압박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페인트 동작으로 타이밍을 뺏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줄 알며 골찬스에서 보이는 침착함은 이미 높은 레벨인 UCL에서도 증명된 것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 완성된 팀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부품

앞서 언급한 캐릭터성을 이유로 저는 이 선수가 체계가 어느 정도 구축되고 완성된 팀에 잘 어울릴 것이고, 그곳에서 아주 좋은 부품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팀으로 간다면 굉장히 고전할 수 있는, 그냥 열심히 뛰는 게 전부인 선수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숄샤르 체제가 어느 정도 구축되고 완성 단계에 다다른 맨유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이 선수의 뛰어난 '오프 더 볼' 능력과 달리 '온 더 볼' 능력은 형편없다는 의견도 있는데 근 1~2년 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합니다. 이 팀에는 지예크부터 쇠네, F.데 용, 블린트까지 팀의 두뇌가 될 만한 선수가 항상 있었고 반데벡은 빌드-업에 관해서는 그들보다 확실한 우위에 있지 않다는 내부 판단하에 다른 역할을 맡게 됐으니까요.

 

그럼에도 17-18시즌까지는 빌드-업에 관여하는 아약스형 미드필더였다고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중심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해가 될 만큼 해당 카테고리에 아주 약한 캐릭터는 아니라는 제 의견입니다. 19-20시즌, 텐하흐 감독이 반데벡을 3선으로 내린 것은 그의 공격적 재능이 한 칸 아래서도 발휘될지 테스트해보기 위함이었는데 이러한 기반에는 17-18시즌 후반기에 보여준 능력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죠.

 

[참조] 반 데 벡에 대한 오해 그리고 짧은 소개 (2019.7.22)

https://ajaxforce.tistory.com/548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맨유에는 브루노-포그바라는 두 중심축이 자리 잡고 있고 반데벡이 경쟁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그들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 같아 보인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 탓에 아약스 시절과는 다른 형태로 수비에서 많은 역할이 요구될 것이고 솔샤르 감독이 그의 공격적인 재능, 강점들을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도 있습니다.

 

반데벡을 포함한 중원 자원의 극대화를 위해 1.4.3.1.2로의 전환을 주장하시는 분도 있지만 저는 맨유라는 팀의 자원적, 선수들의 성향과 특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는 보지 않고 반데벡을 측면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 쪽입니다. 이 때문에 과거에 포그바가 잔류하는데도 반데벡이 맨유로 간다면 놀랄 것이라고 이야기드렸고 그래서 솔샤르 감독이 반데벡에게 한 제안이 어떤 것인지 굉장히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볼 부분은 맨유가 필요로 하는 유형이라는 점이겠죠. 온 더 볼에 강한 유형의 선수는 많은 맨유지만 반데벡처럼 오프 더 볼로 공간을 만들어주고 공격을 풀어주는 그리고 2~3선에서 침투해 득점을 노리는 유형은 부족한 게 현실이니까요. 지배력을 높이면서 공격을 주도할 때 브루노 혹은 포그바와의 궁합은 분명히 좋을 겁니다.

 

또한, 선수단을 강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는 무조건 플러스겠죠. 상기에 언급한 내용은 장기적으로 주전이 되길 바랄 반데벡과 네덜란드 관점에서 보는 기대와 우려일 뿐이고 맨유의 측면에서 보면 로테이션이 필요하거나 교체 카드로 중원에 변화를 줘야 할 때 선택지를 다양하게 그리고 강하게 가져갈 수 있게 되는 옵션이니까요. 물론, 이는 반데벡이 EPL과 맨유라는 팀에 순조롭게 적응한다는 전제에 할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요.

 

+ 여러 네덜란드 & 아약스 선수가 누리의 등번호를 달면서 그의 쾌유를 빌고 있지만 반데벡이야말로 누리와 가장 특별한 관계입니다. 감자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함께 해오며 눈빛만 봐도 통하는, 형제 같은 사이였죠. 만약 34번을 달게 되면 이는 더 큰 각오와 의지가 될 겁니다.

 

++ 생각나는데로 정리해봤는데 워낙 오랜 시간 지켜봐온 선수라서 오히려 빠뜨린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이야기들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