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je

반 마르바이크, 참 답답하십니다

낑깡이야 2012. 6. 27. 11:39
이번에는 두서없이 기분따라 글을 써내릴 겁니다. 2008년, 반 바스텐이 지휘봉을 내려놓고 반 마르바이크가 물망에 올랐을 때 저는 반대파에 가까웠습니다. 반 마르바이크의 지도 방식과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쪽이었거든요. 히딩크, 반 할, 데 한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했으며 개성 강한 선수들을 응집시킬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부임 초기에 선수단 구성, 전술 완성도 등에서 많은 비판을 받곤 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준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에 대해선 찬사를 보내는 것이 마땅한 바.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 기사 작위를 받은 반 마르바이크는 유로 2012에서 발전은커녕 퇴보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 3전 전패 조기 탈락이라는 참혹한 성적표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럼에도 KNVB는 그를 신임하고 있고 사퇴 여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분위기는 연임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다 이해가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흘러가는 분위기가 참 짜증난단 말이죠. 일단 조기 탈락에 대한 원인을 내분으로 몰고가는 언론 플레이가 첫째. 물론 선수들의 스타 의식이 2년전보다 강해진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마저도 
감독이 감내하고 조절해야 할 부분인데 반 마르바이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언론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들이 팀을 엉망으로 만들었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확실히 언론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들은 부풀려 있습니다. 내막은 모르겠으나 이 구성원들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저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존심 강하고 출전에 목말라 있는 반 더 바르트와 훈텔라르가 주전을 요청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감독의 선택에 반기를 들고 팀 분위기를 흐트린 원인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분위기는 반 마르바이크가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선수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로 2012에서의 실패에 대해선 설명해야겠고 연임하기 위한 명분도 있어야겠고 그렇다보니 중심축이 되는 선수들을 모두 내치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2대회 연속 실망감을 안겨준 반 페르시, 강한 어조로 감독에게 반기를 든 로벤은 버젓이 살생부 리스트에서 제외돼 있습니다. 뭔가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내분이 없었더라면 유로 2012에서 성공했을까요? 글쎄요,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허술한 선수단 구성/전술적 완성도가 경기를 거듭할수록 팀의 살을 갉아먹었습니다. 애초 자신의 주장도 제대로 관철시키지 못했고 언행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코치가 바뀌었다고 감독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다니. 자꾸 코치 이야기를 들먹거려야 하는 저도 짜증나는데 결과들이 그렇습니다.

1,2차전 결과 때문에 3차전에서 헤이팅하를 선발에서 제외했다가 오히려 더 큰 위기를 초래했고 기껏 3차전에서 기회를 준답시고 훈텔라르를 선발 기용했으나 전술적으로는 오히려 그를 고립시켜버리는 주먹구구식 운영을 보여줬습니다. 6-0-4로 대변되는 허술한 전술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죠. 그런데 지금 이 모든 잘못들을 단순히 선수들에게 책임전가하시겠다? 정말 재밌는 일입니다 허허.

스테븐스, 반 하네헴 등 여러 인사들이 선수들을 옹호하고 있고 함께 뛰었던 선수들도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동료들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감독은 내분을 인정하고 확실한 주관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팀을 개편하려고 하네요. 근데 이 와중에 그가 수비의 새 리더로 고려 중이며 
헤이팅하를 내치는 이유이기도 한 DF 더글라스는 트벤테 첫 훈련에 불참했네요? 아주 잘 돌아가는 꼴입니다.

이제야 KNVB도 '아차' 싶어 내심 반 마르바이크의 사임을 원하는 눈치입니다. 인사들도 그의 공로는 인정하나 결별하고 새로운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후보인 R.쿠만-F.데 부르는 어렵더라도 아드리안세, 반 할 안 되면 히딩크라도 선임해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데 한도 고려해볼 법하다고 봅니다만. 어찌됐든 선수들을 내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뜻이죠.

반 마르바이크가 옳았고 그가 다시 성공 가도를 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2년 동안 쌓였던 신뢰가 모두 무너졌고 미래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당장 8월, 무섭게 성장 중인 벨기에와 친선전이 예정돼 있는데 승리를 자신할 수 있나 묻고 싶네요. 그 경기에서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을 경우, 반 마르바이크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반 마르바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