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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털어놓는 반 마르바이크 이야기

낑깡이야 2014. 8. 17. 11:26
17일, 대한축구협회가 반 마르바이크와의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습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었으나 이중과세, 거주 문제 등 막바지에 여러 요소가 불거지면서 결국 손을 맞잡지 못하게 됐네요. 그래서 이제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결렬됐으니 소용없다며, 너무 늦었다고 얘기하실 수도 있지만 협상 과정에선 제 나름대로 말을 아껴야 했던 이유가 있었던 터라 이해해주시기 바라며 결렬될 이 시점에 제가 그의 선임을 왜 그렇게 아쉬운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정리해볼까 합니다. 

현실적인 대안
사실 반 마르바이크는 분위기 쇄신을 바라는 대한민국에겐 선택할 수밖에 없는 카드였습니다. FA 시장에서 대한축구협회가 내건 여러 조건을 충족할 만한 감독 가운데 최상의 카드였죠. 후보군 물색 과정 당시만 하더라도 월드컵에서 성과를 낸 감독들을 포함해 여러 후보군이 있었으나 언어, 커리어, 국가 등 여러 요소에서 반 마르바이크보다 매력적인 감독은 없었습니다. '실패를 경험한 점을 높이 샀다'는 이용수 기술위원장님의 말씀도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 의견입니다만 월드컵에서 내외적으로 크게 흔들렸던 대표팀의 분위기를 진압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을 설득할 만한 이름값을 지닌 감독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반 마르바이크가 적임자죠. 2010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엄청난 타이틀이 있으니까요. 반 마르바이크의 자질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저는 그를 감독 후보 1순위로 선택하고 접촉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제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감독, 반 마르바이크
그렇다면 '감독' 반 마르바이크를 얘기해보죠. 먼저 반 마르바이크의 평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2010 월드컵에서 보여준 모습들입니다. 실리적인 색채를 살린 전략으로 엄청난 성과를 냈다는 게 주된 내용. 이러면서 이것이 곧 반 마르바이크의 주요 전략인 것처럼 됐죠. 그러나 사실 저는 반 마르바이크를 평가하는 데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밸런스를 강조했던 페예노르트 임기 시절, 공격적인 축구로 승승장구했던 월드컵/유럽선수권 예선이 좋은 예입니다. 생각보다 꽤 유연한 감독이라는 이야기.

그러나 그 유연함이 히딩크와 반 할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이를 해결해내는 능력이 뛰어난 감독은 아니라는 뜻. 그리고 조력자들과의 호흡에도 굉장히 민감한 감독입니다. 제가 블로그를 통해 수차례 언급했지만 성공한 2010 월드컵과 실패한 유로 2012의 차이점은 그를 보좌하던 카리스마 넘치던 코치 F.데 부르의 유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코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꼭두각시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팀을 총괄하는 반 할과 히딩크와는 다른 유형이라는 거죠.
 
산재한 불안요소
'그렇다면 좋은 코치를 대동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묻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의 취약한 커넥션이 발목을 잡습니다. 2010년과는 다릅니다. 네덜란드의 우수한 코치 자원은 반 할 혹은 히딩크와 손을 잡았습니다. 혹은 F.데 부르, 코쿠처럼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에서 이제는 한 팀을 지휘하는 어엿한 감독으로 성장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결국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나온 루머가 함부르크에서 함께 한 카우만스 코치, 이제 막 코치 수업을 시작한 '사위' 반 보멜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기대되지 않는 조합이었습니다.

이는 반 마르바이크의 취약한 커넥션을 보여준 단적인 예였습니다. 그의 커리어를 보면 아시겠지만 선수 시절도, 감독 시절도 엘리트는 아니었습니다. 고 어헤드-포르투나-페예노르트가 소위 말하는 그의 '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뛰어난 보좌관을 기대한다는 건 확률적으로 어려운 일이겠죠. 그렇다고 사교성이 뛰어나 다른 코치, 감독들과 왕래가 잦은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코치진 구성에 영향을 많이 받는 지휘 체계에 치명적인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UEFA컵 위너 그리고 월드컵 준우승
그렇다고 반 마르바이크를 정말 무능력한 감독으로만 볼 순 없겠습니다. 페예노르트 1차 임기 시절에는 UEFA컵 우승, 2차 임기에선 KNVB컵 우승, 네덜란드 대표팀에선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으니까요. 이 덕택에 리그에는 약하나 토너먼트에는 강한 감독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더군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이야기가 그다지 달갑지는 않습니다. 그가 토너먼트에 필요한 임기응변, 전술적 과감성, 담력과 용단들을 지닌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먼저 UEFA컵은 10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입니다. 당시와 현대 축구를 비교해보면 판이 
얼마나 커졌으며 전술적으로도 많은 발전이 이뤄졌는지 여러분이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KNVB컵 우승 당시에는 운이 많아 따라줬습니다. 강력한 라이벌인 아약스, PSV는 물론이거니와 트벤테, 헤렌벤, AZ 등 빅3 바로 아래에 해당하는 팀들조차 모두 피하는 행운이 따랐습니다. 월드컵 이야기는 블로그를 통해 입이 닳도록 얘기했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네덜란드 이끈 수장
이쯤에서 또 이런 반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네덜란드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않느냐?'고 말이죠. 맞습니다. 아무개나 잡을 수 있는 지휘봉이 아니죠. 네덜란드에서 오랫동안 성과를 낸, 자국팬 대부분이 인정하는 쿠만에게조차 선뜻 건내지 못하고 다시 히딩크에게 SOS 신호를 보낸 게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를 4년간 지켰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일이고 업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선임되던 2008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적임자가 없었습니다. 히딩크는 러시아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었으며 반 할은 AZ에서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리던 시기였습니다. 쿠만도 발렌시아-AZ를 거치며 바닥을 찍고 있던 시기였죠. 사실 그 이전 감독이 누구였나 떠올린다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바로 '초짜' 반 바스텐이었죠. 2004년 당시 지도 경력이라고는 아약스 A1(유스)를 1년 지휘한 것이 고작이던 그에게 사령탑을 맡길 만큼 패닉 상태였습니다.

네덜란드축구협회로선 2006 월드컵, 유로 2008을 거치며 절반의 성공 그리고 과제를 남긴 반 바스텐 후임으로 경험 많은 감독을 원했고 그 과정에서 손쉽게 접촉할 수 있는 인물이 반 마르바이크였습니다. 사실 페예노르트도 그렇게 잡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재정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투자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죠. 결국 상황과 운이 잘 맞아떨어진 선임이었고 시기적절하게 협회의 도움으로 경험이 필요했던 F.데 부르-코쿠까지 대동할 수 있었죠.

'히딩크 케이스'는 글쎄?
앞서 '실패를 높이 샀다'는 기술위원장님의 말씀,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여기서 '히딩크 케이스'를 기대하는 게 정상이겠죠. 유로 2012-함부르크에서의 연이은 실패가 대한민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 이전 레알 마드리드-베티스에서 연달아 실패한 히딩크를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 자존심 강한 감독들이니만큼 자신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직장에서 심기일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 다 동감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른 게 앞서도 언급했지만 반 마르바이크와 히딩크-반 할은 다른 유형의 감독이라는 거죠. 협상 결렬의 주원인으로 지적되는 거주 문제에서도 어느 정도 느끼신 분들도 있겠지만 반 마르바이크는 기본적으로 꼼꼼한 성격이 아닙니다. 그만큼 흐름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히딩크와 반 할은 지도 철학, 뚜렷한 주관, 철저한 전략 등 밑바탕에 쌓인 것들이 많기에 언제든지 반등할 수 있지만 반 마르바이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제 의견. 그래서 마냥 히딩크 케이스의 재현을 기대할 수만은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당장 선임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함부르크와의 결별 이후 그를 찾는 팀은 헹크(벨기에)가 전부였습니다. 정작 네덜란드에선 어느 팀도 그에게 러브콜이나 구조 요청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물론 주급, 계약 기간 등 여러 부가적인 문제들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를 가장 잘 아는 네덜란드 클럽들이 그를 외면했다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투자 비용에 걸맞은 수익(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의심한다는 거죠.

4년의 의미
외국인 감독 선임을 추진하게 된 것이 단순히 다음 월드컵만을 위한 건 아닐 터. 더 먼 미래를 바라본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 히딩크 감독이 팀을 지휘하면서 남긴 산물을 반 마르바이크에게도 기대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확실히 '네덜란드'라는 타이틀을 단 감독이라면 선수 육성, 시스템 정착이 저절로 매치가 될 수밖에 없죠. 그 레벨에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네덜란드 감독이라면 모두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저는 이 점에서도 의심이 듭니다. 그가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만 놓고 보면 그것들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죠. 페예노르트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미래를 위한 운영보다는 현실에 직시하는 운영이 많았습니다. 성향 자체가 
보수적인 것도 이와 무관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지휘봉을 잡게 되면 그냥 월드컵에 진출하고 그럭저럭 싸우다가 탈락하는, 그렇게 4년을 보내고 결별하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리라 줄곧 예상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4년 뒤에는 다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시안컵이 감독 대행 체제로 치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좀 더 긴 호흡으로 감독 선임 작업을 가져가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정황상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런 것들을 설득하고 이해가 가게 하는 것도 협회가 할 일이겠죠. 그래서 다소 다급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던 반 마르바이크 협상건을 그렇게 반대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