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락티코는 실패로 돌아가는가
부활의 키워드, 에레디비지 갈락티코
대망의 11/12시즌. 여느 때처럼 개막을 앞두고 최종 순위를 예상하는 전망이 쏟아졌다. 이 예상에서 공통적인 의견은 'PSV의 부활'이었다. 언론, 평론가, 서포터할 것 없이 대다수가 PSV의 성공을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레디비지 갈락티코'화를 선언, 각 포지션에서 으뜸가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한 이들이 챔피언 아약스를 강력히 압박하리라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조차 그들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았으니.
그 면면이 화려했다. '생각하는 모아이' MF 케빈 스트로트만, 아펠도른의 재간둥이에서 위트레흐트의 메시로 성장한 MF 드리스 메르텐스, 유로보흐의 폭격기 FW 팀 마탑스가 PSV 유니폼을 들었다. 그뿐이랴. 지난 시즌 PSV의 우승을 가로막은, 유다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페예노르트의 아들 MF 지오지니오 바이날둠까지 필립스 스타디온에 안착시켰다. DF 티모시 데라이크, GK 프제미슬라프 티톤 등 묵직한 영입조차 초라하게 보일 정도.
마르셀 브란츠 기술이사의 작품인 갈락티코 정책은 틀리지 않았다. 그 위용은 실로 대단했다. AZ와의 개막전에서 당한 일격은 보약이었다. 초반 레이스에선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듯 비틀거렸으나 이내 아우토반으로 진입, 쾌속 질주를 이어갔다. 특히 안방에선 적수가 없었다. 저력의 아약스만이 간신히 승점 1을 획득해 돌아갔을 뿐, 나머지 팀들은 승점은커녕 엄청난 실점을 안고 필립스 스타디온을 떠나야 했다.
'지단-파본 정책'조차 없었다
과거, 갈락티코의 대명사인 레알 마드리드는 그 일환으로 '지단 & 파본 정책'을 펼친 바 있다. 공격진을 당대 최고의 스타들로, 수비진을 육성한 유소년 선수들로 채우겠다는 정책이었다.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PSV에게는 이런 변명거리조차 없었다. 오히려 수비진 보강에도 꾸준히 힘을 쏟았다. 돌아온 영웅 DF 윌프레드 보우마를 제외한 주축 수비 대부분이 2~3년 사이 영입된 새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공격적인 영입이 오히려 독이 됐다. FW 마탑스의 다재다능함은 FW 올라 토이보넨과 중첩되는 것이었고 MF 바이날둠은 과도한 영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0번이라는 등번호에 어울리지 않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뛰어야 했다. 이 때문에 중원의 끝자락에 선 MF 스트로트만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중압감 속에 팀을 지탱해야 했다. 팀으로 기능하기보다는 재능으로 버티는 느낌이 강했던 PSV였던 셈.
이것이 화근이 됐다. 충격의 3연패. 트벤테와의 홈경기서 귀신에 홀린 듯 쉽사리 실점, 2대6으로 참패한 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이어진 발렌시아 원정에선 또다시 2대4로 대패했고 팀이 채 정비되기도 전에 치러진 NAC 브레다 원정길에선 1대3으로 완패, 치명타를 맞았다. 그리고 홈으로 돌아가는 길, 서포터들은 해명을 듣고자 선수단 버스를 세웠고 그 자리에서 열변을 토하던 루텐 감독은 결국 진정되기도 전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갈락티코가 능사는 아니다
PSV에 합류한 선수 면면은 분명히 '갈락티코'로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밸런스를 지키지 못했다. 이미 FW 토이보넨, FW 저메인 렌스, MF 자카리아 라비아드까지 훌륭한 공격진을 보유했음에도 공격에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즌 내내 밸런스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슈퍼맨'을 방불케 하는 MF 스트로트만의 활약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지만 시기의 문제였을 뿐, PSV의 붕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PSV는 유스에 뿌리를 둔 아약스 & 페예노르트와는 태생이 다른 클럽이다. 모기업을 등에 업은 클럽답게 매 시즌 좋은 성적을 내고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성적이 따라주지 않으면 과감히 메스를 든다. 거스 히딩크 체제에선 이것이 문제로 드러나지 않았다. 히딩크 특유의 카리스마 덕택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탈로 성적에 대한 부담, 잦은 선수단 변화에 따른 응집력 부족이 불거졌고 번번이 이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렇다고 루텐을 옹호할 수만은 없다. 2000년대 후반, 트벤테의 초석을 다진 히딩크의 왼팔로 주목을 받던 시기에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하리라 예상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코치'는 될지언정 '매니저'는 되지 못했다. 전술 분야에선 크게 나무랄 데가 없었다. 매년 위기관리 능력에서 아쉬움을 드러냈고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동기를 부여하는 데에도 능숙하지 못했다. 무관에는 분명히 그의 책임도 있었다.
PSV는 어디로 가는가
애초 루텐은 PSV의 장기적인 계획에 없었다. 감독 교체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 결별할 것이 확정된 상태였다. PSV의 계획은 갈락티코의 명성에 맞는 거물을 사령탑에 앉히는 것. 이 과정에서 베르트 반 마르바이크, 루이 반 할, 딕 아드보카트 등 네덜란드의 이름을 빛낸 명장들의 이름이 한두 번씩 오르내렸다. 그러나 선수 영입 때와는 달랐다. 일방통행이었다.
PSV가 가장 희망하는 이는 오랑예 수장 반 마르바이크였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PSV가 아닌, 오랑예였다. 이후 반 할, 아드보카트 등 거물들과 접촉했으나 아직 큰 성과를 올리진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성적 부진으로 루텐을 경질하기 이르렀고 결국 필립 코쿠 & 에르네스트 파베르 대행 체제로 잔여 시즌을 치르기로 마음 먹었다. PSV의 창대한 계획은 이렇게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계획을 고수하는 강단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과감히 행로를 변경하는가'는 전적으로 잔여 시즌 성적에 달렸다. 코쿠 체제가 성공을 거둔다면 레전드라는 명목하에 새로운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다면 다시 거장의 목마름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AZ를 통해 네덜란드 최고의 기술 이사에 오른 브란츠, 그리고 명예를 위해 집결한 갈락티코. 그들은 새로운 수장과 함께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