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리저브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허구가 아닌 진실이다. 슈퍼스타가 뛰고 있어서? No. 촉망받는 유망주가 누비고 있어서? No. 그렇다면? 선수 시절에는 대 스타였으나 감독으로는 햇병아리인 신출내기 한 감독 때문이다. 반 니스텔로이와 같은 해/같은 날에 태어난, 오랑예 A매치 통산 득점 1위에 빛나는 그 이름, 클라이베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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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에는 '게으른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재능에 의존하는 그였다. 이 때문에 프로 입문하자마자 루이 반 할 감독으로부터 지적 세례를 받기도. 그만큼 기대를 받는 재능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복잡한 사생활과 자기 관리 실패로 커리어를 오랫동안 이어가진 못했다. 본인은 은퇴 직전까지도 경기에 뛰고 싶은 욕망이 강했으나 평범한 노장 공격수로 전락한 그를 더 이상 원하는 팀은 없었다.
이런 상황이 그로 하여금 지도자의 길을 걷게 했다. 그러나 새로운 길은 택한 그는 낙담하지 않고 빠르게 커리어를 쌓아갔다. 오랑예가 유로 2008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베르캄프, 코쿠, 라이지허 등 과거 90년대를 함께 수놓았던 동료들과 KNVB 코치 과정을 수료했고 이와 함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AZ 알크마르, 브리즈번 로어(호주), NEC 네이메헌, 트벤테 리저브를 거쳤으며 가는 곳마다 성과를 냈다.
먼저 '은사' 반 할의 부름을 받아 FW 코치로 부임한 AZ. 그곳에선 에레디비지서 단 한 차례도 두자릿수 득점을 올리지 못했던 엘 함 다위를 득점왕에 올려놓았고 득점력에서 지적을 받던 뎀벨레도 10골을 터뜨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브리즈번 로어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NEC에서 무명의 벨기에 공격수 블레밍스를 득점왕에 등극시키며 '킹메이커'로 떠올랐다.
선수 시절 이미지는 지도, 노력, 연구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코칭스태프로 제2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했을 때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그는 이미 선수 시절 말기부터 달라지고 있었다. PSV 그리고 릴에선 경기에는 많이 나서지 못했지만 훈련장 그리고 벤치에서 젊은 공격수들에게 세심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며 베테랑으로서의 역할을 다 했다.
그런 그가 드디어 리저브 무대를 평정, 감독으로서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코칭스태프로 아약스에 돌아가기보다는 작은 무대서라도 지휘봉을 잡길 원했던 그의 욕심은 오만이 아닌 자신감이었던 것이다. 이미 베르캄프, 코쿠보다 한발 짝 앞서나가기 시작한 '감독' 클라이베르트는 어쩌면 이른 시일 내에 역대급 지도자가 될 자질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프랑크 데 부르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