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je

[WC10] vs 덴마크 - 시나리오의 승리

낑깡이야 2010. 6. 14. 23:49
이날 네덜란드는 덴마크의 견고한 수비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센터백 듀오 아게르-카예르, 수비형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폴센이 지키는 '마의 삼각 편대'는 네덜란드의 숨통을 강하게 조였다. 이 때문에 미드필더진은 경기를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스네이더가 전반 내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 결과, 이들은 전반 45분 동안 다소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쳐야 했다.

그러나 이는 네덜란드에게도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선발 라인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 마르바이크 감독은 전반전에는 무리하게 공격을 감행하기보다는 밸런스를 유지한 채 상대를 탐색하고 흐름을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백 4와 데 용-반 보멜이 버티는 수비형 미드필더 앞선에 경기 조율에 능한 반 더 바르트와 스네이더, 공수에 부지런히 가담하는 카이트를 동시에 투입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네덜란드는 전반전에 노련한 운영으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실점을 막고 후반전에 승부수를 띄울 속셈이었다. 실제로 후반에 개인 전술로 덴마크 수비라인을 무너뜨릴 수 있는 엘리아와 아펠라이를 연달아 투입했고 이것이 승부에 쐐기를 박는 추가골로 이어졌다. 스네이더의 스루패스를 받아 일대일 기회를 맞이한 엘리아가 골문을 향해 침착한 슈팅을 시도, 카이트의 득점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날 네덜란드의 경기에 대해 혹자는 '애초 엘리아가 선발 출장해 경기 초반부터 덴마크 측면 수비를 공략했으면 더욱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나갔을 수도 있었다'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물론 엘리아의 선발 출장이 경기를 쉽게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최상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후반전에 꺼내 들 카드가 그만큼 줄어들어 궁지에 몰리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모두가 반 마르바이크 감독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감독으로선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덴마크와 같은 난적을 상대할 때는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결국 반 마르바이크 감독도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경험 많고 냉정한 반 더 바르트를 선발로, 패기 넘치고 폭발적인 엘리아를 교체 멤버로 기용하는 수를 뒀다.


두 선수의 상반되는 플레이 성향이 이해를 도울 것이다. 반 더 바르트는 조율과 밸런스 유지에 능한 공격형 미드필더이며 엘리아는 드리블, 테크닉 등 개인 전술이 뛰어난 측면 공격수이다. 후반에 교체 투입됐을 때 파급효과가 큰 선수가 어떤 선수인가를 묻는다면 당연히 대답은 엘리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기에서 반 더 바르트가 후반에 투입되는 장면을 그려본다면? 그다지 위협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선제골 이후의 대응도 좋았다. 반 마르바이크 감독은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반 페르시를 빼고 아펠라이를 투입했다. 이는 기동력을 강화, 공격 옵션에 변화를 준다는 점 이외에도 카이트를 원톱으로 이동시켜 미약했던 전방 압박을 강화해 초조해진 덴마크를 공략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 카이트는 부지런한 공수가담과 적절한 상황 판단, 승부에 쐐기를 박는 추가골까지 터뜨리며 리드를 지키는 데 기여했다.


물론 100점 만점을 줄 수는 없는 경기 내용이었다. 불안요소로 지적되던 지오-마타이센의 왼쪽 수비 라인은 덴마크전에도 만족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덴마크의 전반전 주요 공격 루트였던 카운터 어택 과정에서 불안한 위치 선정으로 롬메달에게 번번이 공격 기회를 허용해야 했다. 스테켈렌부르흐의 안정적인 선방이 아니었더라면 실점으로 연결돼 경기가 더욱 어렵게 진행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날 가장 돋보이는 선수는 엘리아였다. 그는 후반전에 교체 투입, 그라운드를 25분 만 누볐음에도 가장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특히 폭발적인 드리블로 경기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버리며 네덜란드가 승기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반전에 선전했던 덴마크가 후반전에 크게 흔들렸던 것도 엘리아의 공이 컸다. 그는 아펠라이와 함께 측면을 공략, 동점골이 필요했던 덴마크가 공격에만 전념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엘리아의 승리가 아닌, 반 마르바이크 감독과 코칭 스태프가 만들어낸 전술의 승리였다. 90분을 복기해보면 네덜란드가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경기를 풀어나갔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E조에서 가장 난적으로 평가받는 덴마크를 상대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냈다. 혹자는 네덜란드의 경기력에 실망을 금치 못했으나 낑깡의 관점에서 이날의 네덜란드는 어느 때보다 현명했다.

AD Sportwereld Players Report
http://www.ad.nl/ad/nl/1049/Oranje/article/detail/490457/2010/06/14/Spelersrapport-van-Oranj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