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미루고 미루던 블린트 포스팅을 하네요. 월드컵 시기에 '써볼까?' 잠깐 생각했었다가 다시 미뤘는데 주변 요청도 많고 블린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아 정리해봅니다. 공교롭게도 이전에 이런 형식의 포스팅을 2차례(스트로트만-뷔트너) 했는데 모두 맨유와 연관이 된 선수들이네요. 하여튼 이 포스팅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의 의견이니 '이 사람은 블린트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신 뒤 마음대로,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하거나 무단으로 가져가시는 분들은 지옥까지 쫓아가서 엉덩이 때려드릴 겁니다. 마음대로 퍼가시고 출처만 남겨주세요-
CAREER
'Mr. 아약스' 대니 블린트의 아들로 암스테르담 토박이입니다. 암스테르담 산하에 있는 AFC 암스테르담을 거쳐 8세에 아약스에 정식 입단, 흐로닝언 임대(2010)를 제외하면 줄곧 아약스에서만 뛴 선수. 어린 시절부터 최후방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 소속 유스팀을 수차례 우승으로 이끌며 주목받은 인재이기도 합니다. 반 바스텐 체제에서 A팀 데뷔전을 치렀고 흐로닝언으로 임대된 뒤 엄청난 활약을 펼쳐 금의환향했습니다. 그리고 11/12시즌을 기점으로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아 현재는 아약스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중요한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개인 수상 경력도 어느새 꽤 쌓였네요. 07-08시즌에는 가장 돋보인 유스 선수에게 수여되는 '아약스 올해의 재능'을 수상했으며 , 12-13시즌에는 '아약스 올해의 선수', 13-14시즌에는 '에레디비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시즌 베스트 11에도 2년 연속 선정됐는데 재밌게도 12-13시즌에는 왼쪽 수비수에, 13-14시즌에는 미드필더에 포함됐었습니다. 블린트의 다재다능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 또한 에레디비지 4연패(10-11~13-14)의 주역이며 네덜란드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는 데 주축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POSITION
일단 소화할 수 있는 포지션부터 정리해볼까요. 중앙 미드필더와 측면 수비, 중앙 수비를 겸하는 전천후 수비 자원입니다. 에레디비지를 기준으로 능숙도를 매겨본다면 중앙 미드필더와 왼쪽 수비(윙백, 풀백 모두 O.K.)는 100, 오른쪽 수비는 75, 중앙 수비는 70쯤으로 봐야할까요? 중앙 미드필더와 왼쪽 수비는 '올해의 팀'에 선정될 만큼 훌륭합니다. 블린트를 이야기할 때 반 할 감독의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를 왼쪽 수비로 기용해서 아쉽다'는 뉘앙스의 발언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을 왼쪽 수비로서의 역량 부족이라던가, 임시방편으로 보면 곤란하다는 이야기. 두 포지션 모두 훌륭하게 소화해냅니다.
오른쪽 수비는 흐로닝언 임대 시절이 전부라서 점수를 높게 주진 않았습니다만 당시 임팩트는 대단했습니다. 후반기에 합류해 수비수가 올해의 선수에 언급될 정도였으니까요. 굉장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줘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반면 중앙 수비로는 재미를 못 봤네요. 어린 시절부터 본, 가장 익숙한 포지션이었음에도 말이죠. 네덜란드/아약스 중앙 수비수들에게 필요한 기술과 두뇌를 모두 지녔음에도 피지컬이 받쳐주지 못한 탓. 그래도 월드컵 당시 윙백과 센터백의 경계선에 있는 네덜란드식 스리백에선 낯선 위치임에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더군요.
STYLE
보신 분들은 익히 아시겠지만 '몸'보다는 '머리'를 쓰는 쪽에 익숙한 선수입니다.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피고 지시를 내리며 대형 유지에 힘쓰고 공수 안정에 기여하는 성향. 1~2수를 내다보는 이러한 성향은 블린트라는 '선수'의 본질로 어느 포지션에 서든 변함이 없습니다. 부족한 피지컬을 보완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죠. 이 점이 반 할, F.데 부르 등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감독들이 그를 높이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Midfielder
플레이 성향은 분류해서 정리해야겠네요. 저는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포지션은 미드필더라고 보기에 이쪽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공격부터. 후방에서 정확한 중/장거리 패스로 활로를 개척하고 짧은 패스와 공간을 찾는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주도권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는 유형입니다. 최근 슈팅, 침투 비중을 높이고 프리킥도 연습 중이나 확률로 보자면 직접 공격을 펼치기보다는 여전히 후방에서 공격진을 지원하는 쪽을 선호합니다.
공격을 풀어가는 형태를 보면 후방 사령관의 느낌이 나지만 수비는 다릅니다. 수비 앞선에서 머무르며 1차 저지선 역할을 하기보다는 중원 싸움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을 즐기는 유형. 특히 좁은 공간에서 상대의 패스 방향은 물론 작은 움직임까지 포착해 한 발 먼저 자리를 선점하고 볼을 탈취하는 예측 수비가 돋보입니다. 13-14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를 보면 그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Left Back
왼쪽 수비는 제 과거의 표현을 가져오자면 '엑스트라 플레이메이커' 유형입니다. 현대 축구에선 공격 전개가 단순히 중원에서만 이루어지진 않죠. 오히려 강한 압박을 피해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상황도 많은데 여기에서 그의 장점이 빛납니다. 폭발적이진 않으나 안정적입니다. 전진 패스, 동료와의 연계 모두 수준급. 공격포인트가 빠진 베인스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과연 베인스에서 공격포인트를 빼면 어떤 매력을 느끼실지 모르시겠습니다만 허허.
왼쪽 수비로 출전했을 때의 수비 방식은 미드필더 때와는 다릅니다. 신체적 불리함을 인지, 적극적으로 달려들기보다는 상대의 공격을 지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수비를 합니다. 이제는 이러한 수비 방식에 익숙해져서 어떤 유형의 측면 공격수를 만나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왼쪽 수비에서 활약하는 블린트를 보고 싶다'는 분들에겐 지난해 8월 포르투갈과의 평가전을 추천. 호날두를 비롯한 측면 공격수들이 고생하는 장면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STRENGTH & WEAKNESS
그럼 이번에는 강점과 약점을 얘기해볼까요. 사실 강점은 스타일에서도 얘기했지만 '머리'를 쓸 줄 안다는 것이겠죠. 경기를 넓게 볼 줄 알며 네덜란드/아약스식 전술에서의 포지션 이해도도 높습니다. 여기서 월드컵 얘기가 나올 수도 있겠네요. 멕시코와의 16강전에서 갑자기 수비형 MF로 전진 배치돼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줬죠. 그러나 당시 MF 스네이더의 전진성 때문에 사실상 중원은 2인 체제로 운영됐는데 그러한 중원에는 익숙하지 않았었다고 변호할 수 있겠네요. 아약스/네덜란드의 4-3-3에선 왼쪽 수비와 미드필더 모두 훌륭히 소화해낸 경력이 있습니다.
그밖에 강점이라고 하면 정교한 퍼스트 터치를 기반으로 한 볼 간수 능력을 얘기할 수 있겠네요. 볼 탈취와 탈압박에서 빛나는 장기. 그리고 앞서 언급했지만 주변을 계속 살피는 상황 인지력, 너른 시야와 포착한 공간으로 정확한 패스를 건넬 수 있는 왼발도 그의 강점. 특히 상대 수비의 움직임을 예측해 조직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공간 패스와 얼리 크로스에 능합니다. 공격포인트는 많지 않지만 이러한 패스가 아약스의 위협적인 공격, 그 시발점이 되는 케이스가 상당히 많습니다.
어깨와 손을 잘 쓰는 지능적인 선수이기도 합니다. 자신보다 체구가 큰 혹은 빠른 공격수들을 영리하게 막아내는 것도 이 덕분이죠. 성격이 예민한 공격수들을 성가시게 하는 유형. 한편 '축구 기술'이 굉장히 좋습니다.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기술은 드리블 돌파, 탈압박 능력 등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것들과는 다른 쪽. 효율적인 상체 페인팅을 통해 상대를 현혹시켜 공간을 만들어내고 전진/패스 이지선다와 타이밍 뺏기로 그 공간을 활용하는 데 능합니다.
그럼 약점은 뭘까요. 역시 피지컬을 가장 많이 지적받습니다. 이제는 노련미가 많이 늘어 정작 공격수들과의 1:1 장면이나 중원 싸움에선 크게 드러나지 않는데 역시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공간이 많이 생길 때 두드러집니다. 더군다나 아약스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공격 작업에 자주 참여하는 선수다보니 종종 가속이 붙은 선수들에겐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가 있죠. 이 부분은 중앙 수비, 중앙 미드필더의 보조가 필요한, 좋게 얘기하자면 '블린트 사용법'이며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블린트가 안은 '리스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PROSPECT
저는 에레디비지 선수들과 궁합이 좋은 쪽은 EPL이라고 생각합니다. 리그 스타일뿐 아니라 환경 적응 등 경기 내외적인 부분에서 익숙한 쪽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라 리가는 네덜란드 그리고 에레디비지 선수들에겐 최악의 조건이라고 말하곤 하죠. 그래도 그 와중에 오랜만에 '라 리가에서도 통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선수가 생겼는데 그가 바로 블린트입니다. 블린트 본인도 장단점을 나열하며 라 리가가 본인에게 더 어울리는 리그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EPL=실패'라 주장하는 것도 섣부른 예상이 아닐까요. 저는 리그만큼이나 어느 팀, 어느 감독의 품으로 가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루머대로 반 할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네덜란드의 젊은 축구인에겐 그보다 좋은 조건은 없는 셈이죠. 아약스에서 하던 축구를 그대로 이어갈 수도 있겠구요. 쿠만의 사우스햄턴, 벵거의 아스널과도 좋은 궁합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사실 벵거는 블린트를 유스 시절부터 탐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대표팀에선 어떤 형태로든 붙박이 선수가 될 겁니다. 왼쪽에선 아직 블린트의 노련함을 넘어설 만한 인재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중원에서도 클라시, 스트로트만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경쟁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트로트만은 앞선에서 활약하는 유형으로 굳어져 직접적인 경쟁자는 클라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두 선수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하겠습니다. 반 할과는 선수를 판단할 때의 관점이 다른 히딩크가 어떤 선택을 할지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