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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흐에 대한 모든 것

낑깡이야 2020. 2. 13. 14:08

최근에 MF 하킴 지예크(아약스)의 첼시행이 거론되면서 이 선수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아직 구두 계약 수준이고 협상 절차가 남아 있지만 VI, 텔레흐라프 등 네덜란드 유력 언론에서 동시에 다루는 걸 보니 유력한 분위기입니다. 계약 기간은 협의 중이고 이적료는 45m 수준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약스의 바뀐 기조가 '겨울에는 핵심 전력의 유출은 없다'는 쪽이라서 윈터브레이크 때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만 여름이라면 다르죠. 아마 무조건 잡는다는 쪽보다는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조율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AS로마 이적건처럼 마지막에 틀어질 수도 있는 게 이적이라고는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지예크라는 선수를 정리하기 좋은 시점이라고 판단해 글을 써볼까 합니다.

지예크는 참 흥미로운 선수입니다. 근년에 챔피언스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하면서 주시하는 이들은 많아졌지만 이 선수가 소속된 아약스 & 에레디비지까지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분은 소수다보니 정작 이 선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립니다. 그런 지예크에 대한 저의 평가는

'에레디비지의 왕' 그리고 '트렌디한 플레이메이커'

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CAREER & POSITION
헤렌벤 / 에멘 유스에서 성장, 12-13시즌에 처음으로 프로에 데뷔했는데 풀타임 주전 첫해인 13-14시즌부터 리그를 흔들어놨습니다. 소위 말하는 '난 놈'이었습니다. 당해 20개 가까운 공격 포인트를 올렸으며 주전을 꿰찬 프로 2년 차부터 트벤테를 거쳐 아약스에서의 19-20시즌까지 7시즌 동안 창의력, 파괴력을 기반으로 해마다 엄청난 공격 포인트를 생산해내고 꾸준히 리그 정상급 기량을 선보여왔습니다.

헤렌벤에서는 유스부터 프로까지, 흔히 메짤라라고 표현하는 3미들의 좌측 미드필더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다가 트벤테로 이적한 후에는 공격적인 재능을 살리려는 팀의 선택으로 우측 공격수로 전진배치돼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렸죠. 그리고 아약스로 이적해서는 보스 체제에서는 쇠네-클라센과 중앙 미드필더로, 텐 하흐 체제에서는 우측과 중앙을 오가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STORY
데뷔 초기부터 '더치 외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습니다. 물론, 커리어를 보내면서 많은 변화와 발전을 겪으며 달라졌습니다만 실제로 프로 초기에는 외소한 체격, 아무도 보지 못하는 길을 보는 창의력과 그 곳으로 패스를 뿌려줄 수 있는 왼발킥 등 외질과 닮은 구석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트벤테에서 아약스로 이적하기 전에는 외질에 대한 그리움이 있던 샬케로 이적할 뻔하기도 했었죠.

네덜란드 연령별 대표팀 출신이고 대표팀 상비군에도 포함됐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유니폼을 입지 못하고 모로코를 택했습니다. 당시 언론, 팬 모두 대표팀의 미래라고 입을 모았던 것과 달리 히딩크 감독의 반응은 냉랭했고 결국 이것은 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았던 히딩크 감독의 많은 실수 가운데서도 아직도 그리고 가장 비난을 많이 받는 부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약스에서도 꾸준히 활약하면서 세비야, 리옹 등 많은 해외 클럽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고 실제로 AS로마로 이적할 뻔한 시기도 있었지만 아약스에 잔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비야를 거절한 게 큰 화제였는데 '돈은 우선 순위가 아니다. 나는 축구를 사랑하며 축구를 즐기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죠.

관련 글 - 하킴 지예크 재계약 후 인터뷰 「이적이 내 목표가 아니다」
출처: https://ajaxforce.tistory.com/550

실제로 아약스는 근년에 정책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이적 시장의 기조, 주급 체계 등 많은 것에 변화를 줬고 선수단 포함 구단 인력 비용으로 나가는 지출을 레스터(EPL), 나폴리(세리에A)와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타디치, 블린트, 프로메스 등 에레디비지 출신 빅리거들을 리턴시키고 지예크 같은 내부 인재를 잡아둘 수 있었던 원동력이죠.

 

한편, 아스널이 드림팀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약간 와전된 면이 있습니다. 2년 전, 구단 유튜브 공식채널 Q&A 코너에서 아약스 이외에 뛰고 싶은 팀으로 아스널과 바르셀로나를 언급한 적은 있지만 그 이후로는 공식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애정을 드러낸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즌에 이 선수의 바이아웃 존재 여부가 참 뜨거웠었는데 지난 10월 재계약 과정에서 진위 여부가 밝혀졌습니다. 텔레스포트의 팟캐스트 코너 '킥-오프 에레디비지'에서 아약스 담당 기자 발렌틴 드리센과 마이크 베르바이는 30m의 이적 조항 허용 금액(바이아웃)이 존재했고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이 조항이 삭제됐다고 전했습니다.

STYLE
2선 어느 곳이나 다 소화할 수 있고 3미들의 좌우도 자연스럽게 소화하지만 사실 이 선수는 포지션으로 정의하는 것보다는 플레이 성향으로 정의하는 것이 옳습니다. 천상 플레이메이커입니다. 포지션, 위치에 얽매이지 않고 부지런히 경기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경기에 관여하고 볼의 순환을 매끄럽게 해주며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인물이죠.

 

제가 이 선수를 에레디비지의 왕이라고 표현하는 건 이러한 특징과 경기 지배력 때문입니다. 헤렌벤 2년 차부터 트벤테를 거쳐 아약스까지 항상 전술의 구심점으로 활약해왔습니다. 적어도 에레디비지 내에서는 그럴 만한 능력과 가치가 있는 선수였습니다. 그가 떠난 트벤테가 주저앉게 되고 유럽에서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던 아약스가 UEL 준우승과 도메스틱 더블(리그+컵) + UCL 4강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게 된 것에 그의 지분이 없다고 할 순 없겠습니다.

 

밀집된 공간에서도 동료의 주발에 정확하게 가져다줄 수 있는 날카롭고도 정확한 패스 능력(18-19 UCL 4강 1차전 vs 토트넘, 선제골 도움), 공간이 났을 때 골문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강력한 왼발 중거리슛(18-19 UCL 조별리그 2차전 vs 바이에른, 중거리 슛 / 19-20 UCL 조별리그 2차전 vs 발렌시아, 선제골 등), 좁은 공간에서도 볼을 지켜내고 연계하면서 압박을 풀어낼 수 있는 테크닉 등 무기가 참 많은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플레이들을 해냅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 선수를 높게 평가하는 건 자신이 그리는 그림대로 공격을 조립한다는 점입니다. 의도적으로 오밀조밀하게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상대 수비를 유인한 다음 측면으로 크게 전환해서 공격수의 페넌트레이션을 유도한다거나 이 과정에서 상대의 공수 간격에 생긴 작은 틈에 날카로운 패스로 균열을 일으키는 식의 행위 말이죠. 

 

그뿐 아니라 일반적인 플레이메이커들과는 다르게 공수 전환 과정에서 기여도가 높습니다.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경합해주고 압박을 통해 볼을 탈취할 시에 곧바로 역습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우측에서 지예크가 수비 깊숙한 곳까지 내려와 압박으로 볼을 따내고 좌측으로 크게 벌려줘 타디치가 페넌트레이션을 하거나 오버래핑한 우측 수비수 혹은 다른 주변 동료와 2:2로 공격을 풀어가는 게 아약스의 주요 역습 루트였죠.

관련 글 - 19-20 아약스, 데 용-데 리흐트 없어도 '타디지예크(타디치+지예크)'가 있음에 올해도 강하다
출처: https://ajaxforce.tistory.com/555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아약스 소속 볼 경합 시도 및 성공 모두 1위를 기록했던 게 바로 지예크입니다. 텐 하흐 체제는 1선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요하고 체계적인 압박을 통해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가져가는데 여기서 타디치-지예크의 수비 공헌도는 결코 적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혹자는 '외질 같다', 다른 누구는 '마레즈와 유사하다'고 하는데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분명히 닮은 구석들이 있죠. 그러나 앞서 언급한 높은 수비 기여도는 외질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이며 직접적으로 페넌트레이션을 시도하고 돌파를 즐기는 마레즈와 경기를 조립하는 것에 능한 지예크는 차별점이 있습니다.

RISK
지예크에 대해 우려를 표할 때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피지컬이 너무 약하다', '빅 클럽 스카우트들이 거른 것에는 이유가 있다' 정도가 있겠네요. 피지컬은 만약 첼시로 이적한다는 가정하에 기준이 EPL이라는 점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겠네요. 피지컬의 리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니까요.

그래도 프로 경력이 8년 차, 리그 최정상급 선수로 활약한 시기로만 쳐도 6년 차고 유럽 무대에서 맨유, 토트넘, 첼시를 경험했으며 좋은 활약을 펼친 기록도 있으니 지켜볼 여지가 있겠습니다. 이 정도 커리어를 지닌 선수가 어떠한 확신 없이 EPL행을 택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그보다 제가 이 선수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느낀 점과 세부 스탯을 종합해 봤을 때 스카우트들이 우려를 표할 만한 점은 이런 겁니다. 우선 '슈팅할 타이밍에 패스가 가고, 패스가 갈 타이밍에 슈팅이 나간다'는 느낌을 받는 경기들이 간헐적으로 나옵니다. 이것이 좋게 이야기하면 지예크의 창의력이기도 하고 시즌 전체로 봤을 때는 큰 문제가 안 되는 점들이지만 팀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의 플레이 선택지에 대한 능력에 의문을 표할 수도 있죠.

한편, 턴오버가 많은 유형입니다. 볼을 굉장히 많이 만지는 성향이고 드리블, 패스 등 플레이 하나하나가 도전적이다보니 시즌 전체로 통계를 내면 피탈취율이 꽤 높은 편입니다. 아약스에서는 그만큼 전진패스와 키패스, 도움을 양산해내면서 실보다 더 큰 득을 안겨줬지만 만약 그가 다른 팀에서 '부품'으로 뛰게 되면서 볼을 만지는 횟수와 비율이 줄어든다면 강점보다 이러한 약점이 두드러질 위험 소지는 있겠죠.

 

012

PROSPECT
만약 첼시로 가게 된다면 그래도 EPL에서 가장 텐 하흐 체제 아약스와 유사한 축구를 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높은 에너지 레벨을 바탕으로 공수 전환을 빠르게 가져가고 선수들의 수행 능력과는 별개로 하프스페이스를 계속 공략하려고 노력하는 램파드 감독의 전술은 지예크에게도 잘 어울리라고 봅니다.

프로에서 정상급 기량을 얼마나 꾸준하게 보여주었는가, 공격 포인트에서 골과 도움이 얼마나 고른 분포를 보였는가(공격 자원 기준) 등 제가 에레디비지 출신 선수들의 해외 성공 여부를 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지예크는 이런 기준에서는 차고 넘치는 자원입니다. 기량적인 측면에서는 전성기에 돌입한 시점이 아니라 이미 전성기를 보내는 중인 선수입니다. 결국, 관건은 앞서 언급한 리스크 혹은 편견을 이겨내는 것과 리그, 문화 적응 같은 부수적이면서도 중요한 그런 것들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