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ivisie

AMAZING FRANKIE - 산 시로를 잠재우다

낑깡이야 2010. 12. 9. 18:51
2-0 at 산 시로.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마틴 욜의 사임으로 갑작스럽게 아약스 지휘봉을 잡게 된 프랑크 데 부르. 그는 10년 전 그대로였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발휘, 감독 데뷔전을 환상적으로 치러냈다. 대행에 그치지 않고 장기집권하겠다는 야망을 드러냈던 프랭키. 그 야망이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한 셈. 단지 한 경기에 불과하지만 기대를 감출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프랭키'이기 때문이다.

아약스-오랑예, 같으면서도 다르다
아시다시피 프랭키는 아약스 A1 코치이자 오랑예 A팀 코치다. 아약스 유스 시스템, 오랑예 스태프 - 반 마르바이크, 보른, 코쿠 - 등과의 교류 혹은 영향이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프랭키의 전술은 겉으로는 오랑예 - 반 마르바이크 - 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나 속은 전혀 다르다. 오랑예 전술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하는 그는 아약스에 어울리는 전술을 들고 나오는 유연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기본 전술을 4-2-3-1로, 그리고 3선의 간격을 상당히 촘촘하게 가져가는 것은 유사하다. 그러나 부분 전술에서 차이가 있다. 오랑예가 상대를 끌어들여 배후 공간을 공략하는 데서 공격을 풀어나가는 것과 달리 산 시로에서 첫선을 보인 아약스는 압박라인을 높게 설정, 상대를 전방부터 강하게 압박해서 빠른 스피드로 역습, 수적 우위를 점하는 데서 경기를 풀어나갔다. 평이한 압박 형태를 보여준 욜 체제와는 다른 모습.

이는 수비형 미드필더 2인의 움직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에노와 데 제우는 강한 압박뿐 아니라 전진에서도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서로 혹은 다른 동료를 활용해 패스를 주고받고 빈 공간을 빠르게 파고들어 상대 진영을 파괴했다. 수비에 전념하고 공격진 3~4인에 볼을 넘기는 임무에 주력했던 오랑예와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한편 골키퍼를 제외한 주전 10명 전원이 10km 이상을 뛴 기록도 눈길을 끈다.

루이-미키의 공존 그리고 측면
아약스의 가장 큰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 수아레스와 술레이마니의 공존이다. 두 선수 모두 세컨드톱에 가장 어울리는, 중첩되는 재능들. 그러나 리그 최강의 공격수로 자리 잡은 수아레스를 신참이 밀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 결국 에레디비지 역대 이적료 1위를 자랑하는 술레이마니는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뛰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VVV전. 수아레스의 부재를 틈타 맹활약,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러나 프랭키호에선 공존의 가능성을 남겼다. 키는 이렇다. 그동안 오른쪽 - 프리롤이라고는 하나 - 에 묶여 있던 수아레스를 자신이 선호하는 왼쪽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술레이마니를 배치했다. 중앙으로 파고드는 측면 공격수의 임무를 부여한 것. 그리고 뒤에는 측면 공격력이 뛰어난 어비-VDW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비슷한 스피드로 함께 전진할 수 있는 에릭센을, 전방에는 간결하게 볼을 뿌려줄 수 있는 데 용을 투입.

이는 측면과 중앙에서 날카로운 공격이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효과로 이어졌다. 자신감 넘치는 1대1 공격과 과감한 슈팅, 측면 혹은 중원의 동료와의 적절한 호흡으로 위협적인 공격 기회를 수 차례 생산해냈다. 상대 수비를 혼란에 빠뜨리는 적절한 스위칭도 인상적이었다. 만약 이것이 완성도를 높인다면 가장 추워지는 선수는 엘 함다위일 것이다. 득점력이 떨어져도 보좌해줄 수 있는 데 용의 중용이 예상된다.

덴마크 소년, 중원의 열쇠를 쥐다 
산 시로에서 가장 빛난 선수는 골을 넣은 데 제우와 알더베이렐트도, 주장 수아레스도 아니었다. '덴마크 소년' 에릭센이었다. A1 시절 프랭키호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추억을 되살리며 훨훨 날았다. 그러나 단순히 프랭키의 애제자, 베르캄프의 강추 유망주, 제2의 라우드럽이기 때문에 그가 키를 쥐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입설이 나도는 테오 얀센, 스하르스뿐 아니라 아약스 미드필더들에겐 없는 무언가를 쥐고 있다.

단순하다. 기동력. 이것이 아약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다. 그동안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판단력, 간결한 테크닉으로 볼을 전방으로 빠르게 운반하고 이를 공격진에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선수가 없었다. 심 데 용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낙제점에 가까운 선수다. 그동안 중원에 과부하가 걸리고 역동적인 모습을 잃었던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에릭센은 이를 갖췄고 이 분야에서 특급이 될 자질을 갖춘 유망주다.

그가 지닌 창조성, 적극성, 슈팅의 날카로움 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동력이다. 현 시스템이 주력으로 자리 잡는다면 테오 얀센은 트벤테에서의 상승세를 이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비테세에서 임대 중인 아이사티, 혹은 영입리스트에 올라 있는 메르텐스 등이 적합한 인물. 반면 스하르스는 에노, 데 제우와는 또 다른 장점을 지닌 선수로 중원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프랭키호의 남은 과제
산 시로에선 최상의 전력이 아니며 동기부여도 되지 않은, 즉 100% 상태의 팀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 만날 상대들은 죽을 각오하고 달려들 팀이다. 그것이 설령 약체라 하더라도 까다롭긴 마찬가지. 아약스에겐 강호를 상대해야 하는 법만큼이나 약체를 공략해야 하는 법도 중요하다. 아직 리그를 포기하긴 이른 시기. 유로파리그와 KNVB컵도 남아 있다. 상황, 대회에 따라 유연성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일.

한편 측면 활용법도 두고 봐야 한다. 산 시로에선 수아레스-술레이마니를 활용, 구역을 압박하는 형태로 전술을 펼쳤지만 A1에서는 요젭손을 중심으로 측면을 넓게 활용했던 프랭키다. 외스빌리스, 요젭손 등 기존 선수들 혹은 겨울에 합류할 그 누군가 - 베르훅? 베렌스? - 가 가세한 그 후에는 다른 형태로 측면을 가져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비, 수아레스 등 일부 선수들이 떠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전망은 밝다. 단 한 경기뿐이었지만 임팩트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대단했다. 프랭키도 밝혔듯이 선수진은 부족함이 없다. 여전히 에레디비지에선 최정상급이며 유럽대항전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의 부진은 조합과 세부 전술, 정신적인 부분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바로 잡는다면 아약스는 다시 우승경쟁에 끼어들 수 있을 것이다. 프랭키호.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