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je

vs 에콰도르/가나, 플랜 B의 가능성을 보다

낑깡이야 2014. 6. 1. 06:00
에콰도르전에 첫선을 보인 5-3-2, 출발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겠죠. 아무리 소속팀에서 이 전술을 경험해본 선수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 할 체제 대표팀에선 며칠 동안 훈련한 것이 고작인 전술이니까요. 지나치게 어렸던 베스트 11도 우려대로였습니다. DF 콩골로, DF 벨트만 등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젊은 선수들은 안정감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반 할을 어렵게 했습니다. 에콰도르전의 수확은 '데파이 카드'의 가능성과 MF 클라시의 활약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베테랑들이 대거 가세한 가나전은 달랐습니다. 반 할이 원하던 그림을 볼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최종 결과는 1대0에 불과했지만 내용에서 보여준 상대와의 격차는 그 이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로벤에게 찾아온 여러 손쉬운 기회 가운데 1~2개만 살렸어도 점수 차는 더 벌어졌겠죠. 오히려 단기간에 이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준다면 브라질에서 플랜 A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어차피 스페인-브라질을 겨냥한 전술인 만큼 실제로도 플랜 A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가나전을 복기해볼까요. 칭찬부터 해보죠. 예상대로 '완전체 공격진'은 대단했습니다. FW 반 페르시에 로벤-스네이더라는 날개를 달아주니 에콰도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일당백'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공격을 풀어가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가나의 전력, 평가전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말이죠. 5-3-2로의 전환 당시부터 이 조합이라면 숫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만들어주리라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그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재편된 수비진도 듬직했습니다. DF 블린트가 측면으로 가고 MF N.데 용과 DF 블라르가 2~3선에서 중심을 잡아줬는데 덕분에 볼을 안정적으로 점유하고 경기를 한결 여유롭게 풀어갈 수 있었습니다. 역시 위험 부담이 큰 전술인 만큼 경험이 절대적인데 N.데 용과 블라르가 이를 잘 보여줬습니다. N.데 용은 좋은 시즌을 보냈다는 사실을 경기력으로 증명했고 DF 블라르도 애스턴 빌라에서 산전수전을 다 경험한 것이 헛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반 할이 블린트를 중앙 미드필더로 활용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LB로서의 역량 부족이라던가, 임시방편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블린트는 네덜란드에서 훌륭한 중앙 미드필더이자 가장 뛰어난 측면 수비수입니다. 불과 1시즌 전만 해도 에레디비지 No.1 LB였고 아약스 올해의 선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되겠습니다. 이를 가나전에도 뛰어난 활약으로 증명했습니다.


이렇게 칭찬만 할 순 없겠죠. 아쉬운 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아쉽다기보다는 보완했으면 하는 점이 있었네요.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의 숫자입니다. 물론, 셋만으로도 위협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지만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면 날카로움을 더할 수 있어 보입니다. 
수비 조직력뿐 아니라 개개인의 기량도 뛰어난 스페인을 상대하려면 말이죠. 가나전으로 보면 MF 데 구즈만이겠네요. 부지런히 뛰며 중원 장악에는 큰 보탬이 됐으나 이 점은 아쉬웠습니다.

MF 페르, MF 클라시, 여차하면 MF 바이날둠까지 이 자리에 설 수 있는데 이들 모두 가나전은 벤치에서 지켜봤습니다. 데 구즈만의 수비적 공헌도가 좋았기에 이해가 가는 선택이었습니다만 아쉬웠던 건 사실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이 조합이라면 MF 페르도 경쟁력이 있어 보입니다. 남은 웨일즈전에 기회를 받겠죠. 서서히 5-3-2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하네요. 이 짧은 시간에 완성도를 이만큼 끌어 올렸다면 본선에선 더 기대해봐도 되겠네요.